‘제복 범죄 부추기는 제복’ 직접 사보니… 연극 소품이라 둘러대면 두말않고 내줘

입력 2010-10-16 13:16


“3만원만 줘. 모자랑 군화는 안 필요해?”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15일 만난 상인 A씨는 연극에 필요한 군복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저 없이 물건을 내놨다. 이 골목에는 A씨처럼 군장(軍裝)을 파는 노점상 10여명이 매대 위에 군복과 군모, 군화 등 대부분 군장을 구비해 판매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8만원 정도면 모든 군장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상인 B씨는 “직접 제작하는 옷이나 장비도 있지만 주로 제대한 군인들로부터 싸게 산 물건들이 많다”며 “군 계급장도 원하면 달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에서는 군장만 아니라 경찰 제복도 연극 소품에 쓰려 한다는 말 한마디면 쉽게 구입이 가능했다. 상점 계산대 옆에는 ‘경찰 사칭 범죄가 늘고 있으니 신분확인 후 판매를 바란다’는 경찰서의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나중에 교수님 사인이나 받아와라”는 말이 전부였다. 가게에는 경찰 제복 외에도 수갑 같은 용품도 진열돼 있었다.



군인이나 경찰을 사칭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군복이나 경찰복 등 군·경찰 용품은 아무 제재 없이 판매되고 있다.

군 장성 행세를 하며 사기 행각을 벌인 손모(49)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손씨는 남대문시장에서 산 군복에 준장 계급장을 달고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고향향우회 회원 등 6명으로부터 “군납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14억5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서울 북부지법은 지난 3일 손씨 항소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해에는 서모(35)씨가 엘리트 장교로 자신을 소개하며 미혼여성을 유혹해 수천만원을 뜯어냈다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서씨는 2008년 C씨(37·여)를 상대로 육군사관학교 출신 특전사 소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5개월 동안 75차례에 걸쳐 2600여만원을 가로챘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서씨는 항소했으나 전주지법은 죄질이 불량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해 3월에는 경찰을 사칭하다 4차례나 적발됐던 전모(31)씨가 출소 100여일 만에 다시 경찰 행세를 하다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관련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군·경찰 관련 물품판매를 규제하는 관련 법규가 미비한 데다 판매를 원천봉쇄하기도 어려워 단속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방부는 지난 3월 일반인이 군장을 착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으로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반인이 군복 등을 구매할 때는 성명, 주민번호 등을 적게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경우에는 경찰 제복 판매 등을 금지하는 법령이 전무한 상태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경찰복을 입고 경찰을 사칭하면 ‘공무원사칭죄’로 처벌하지만 판매 자체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면서 “연극 소품 등으로 활용되는 일은 불가피하지만 경찰 사칭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 정비와 엄격한 단속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