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의 현장’ 펴낸 한승헌 전 감사원장, “기억에 남는 연설? 좌중을 웃기세요!”

입력 2010-10-15 18:11


“연설은 길면 지루해서 안 됩니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말도 금물이에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세요. 그리고 웃기세요. 그럼 당신의 연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겁니다.”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76) 변호사가 밝힌 ‘말 잘하는 요령’이다.

한 변호사는 자신의 연설문을 묶은 ‘스피치의 현장’(매일경제신문사)이란 단행본을 최근 펴냈다.

책에는 2009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도쿄 추도식에서 했던 추모사 같은 묵직한 것에서부터 건배사나 주례사 같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설 등 102편이 수록됐다.

평생 인권변호사로 활약해 온 한 변호사는 평소 유머를 잃지 않는 달변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우리 활동자금도 궁하니, 누가 수첩 들고 한 변호사 뒤를 따라다니면서 유머를 받아 적어가지고 출판을 하자. 그래서 돈 좀 벌자”는 우스갯소리를 남겼을 정도다.

14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변호사는 “오랜 세월 사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연설을 했는데, 연설이 일회용 생방송처럼 끝나니 아까웠다. 이제 모두에게 연설의 기회가 열리는 ‘만인 스피치 시대’인 만큼 그동안의 연설문을 책으로 엮어 많은 사람과 말 잘하는 법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좌중을 압도하려면 연설문에 진정성과 개성이 최우선적으로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은 기본적으로 청중을 설득해야만 하는데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틀에 박힌 단어를 나열해선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기억에 남는 스피치(연설)로 2005년 8월 22일 북한이 주최한 SBS 북한방문단 환영 만찬에서 한 건배사를 꼽았다. 거기엔 이런 대목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소망하고 다짐해야 할 일은 참으로 절실하고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하나 말로 다하지 않아도 공통된 염원을 이심전심으로 서로 공감하는 터입니다. 제가 ‘이심’ 하고 선창을 하면 여러분께서는 ‘전심’ 하고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5월 이웃돕기 유공자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기부를 영어로 도네이션(Donation)이라고 하는데, 어원을 연구해 보니 한국어의 ‘돈 내쇼’에서 시작했더군요”라고 한 연설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검사를 거쳐 변호사가 된 한 변호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양심수나 시국사범을 변호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대표적 인권변호사다. ‘어떤 조사’ 필화사건과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두 번 옥고를 치렀다. 감사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대통령 통일고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요즘 대학에서 저작권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학점을 주는 정식 과목인데 대학교수 중에서는 내가 아마 최고령일 것”이라며 웃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