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카드로 이용됐던 개헌론, 이번에도?

입력 2010-10-15 18:21


현 정권 최고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분권형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차기 대선 주자들이 생각하는 개헌 방향과 시기가 달라 합의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마지막 9차 개헌 이후 여야 모두 정치 개혁보다는 당리당략 목적으로 개헌 카드를 이용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전력을 가진 여야가 이번에 순수한 의도로 개헌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숱한 논의과정에서 ‘실세’ 정치인들의 오락가락했던 발언과 개헌 의지도 이런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현 정부 들어 ‘개헌 전도사’로 나선 이재오 장관.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그는 개헌에 줄곧 거부반응을 보였다. 2003년 11월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당내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논의가 나오자 극히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며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2005년 9월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는 “국민을 볼모로 (개헌 등) 정치적 승부를 던지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다”며 공개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듬해 2월 임채정 국회의장의 개헌 의지 피력과 관련, “현 정권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개헌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던 그는 근래 들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권력 분산은 필요하다”며 “이것은 제가 평소에 생각해 왔던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장관은 본인의 개헌 드라이브에 청와대가 국정운영 차질 등을 이유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15일 “모든 정치적 사안은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 개헌은 협상이나 꼼수로 되는 것도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다.

변함없이 대통령 4년 중임제 소신을 지키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소신 강도는 ‘그때그때’ 달랐다. 2007년 1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정권 연장을 노리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현 정부 들어서도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친이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권력구조 개헌 추진 작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개헌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며 부정적 뉘앙스를 풍겼다.

야당 ‘실세’들 역시 마찬가지다. 2005년 9월 “개인적으로 내각제가 좋은 제도라고 본다”던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5년여 뒤인 지난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 정부 때 강력하게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드라이브를 걸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최근에는 의지가 퇴색한 모습이다. 정 최고위원은 2007년 12월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4년 중임제가 상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지금 개헌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