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산하기관이 불법 부추겨서야
입력 2010-10-15 17:43
정부 산하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이 불법행위를 일삼는 업체에 채권추심 업무를 위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현경병 의원 국감자료에 따르면 기보는 2007년부터 민간회사에 채권추심을 위탁해 왔는데, 3차례 선정한 총 8개사 가운데 7개사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불법추심으로 적발된 업체라는 것이다. 그 중 4개사는 매년 적발될 만큼 상습적으로 불법추심을 해왔다고 한다.
업체 선정 기준에는 ‘불법 추심행위 방지’ 항목이 있고, 배점도 10점에서 15점, 20점으로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업체가 이 항목에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거짓 표기하면 무사통과됐던 모양이다. 그대로 믿었는지, 믿는 척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확인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불법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불법을 자행하는 업체에 일을 맡기면 결국 불법을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쪽에서는 불법을 단속하고 한쪽에서는 일감을 안겨준 셈인데, 이래가지고는 정부의 권위와 기강이 설 리가 없다. 업체들에게 정부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 하는 일이 이런 식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정직한 사람만 손해 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채권추심 업체들은 채무자로부터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수익이 나고, 직원들도 대부분 성과급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불법행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해는 심각하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정부가 조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보증심사로 부실채권을 줄이는 일이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 자료에 따르면 기보 보증을 받은 지 3개월도 안돼 발생한 초단기 보증사고가 2007년 이후 31건, 122억원에 달한다. 한 업체는 8일 만에 부도를 냈다고 한다. 상당수가 속칭 ‘먹튀’를 작정한 기업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가리지 못했다면 심사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칫 부정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 기보는 집안 단속부터 제대로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