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동호 위원장의 아름다운 퇴장
입력 2010-10-15 17:43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어젯밤 해운대 요트경기장에서 막을 내렸다. 영화제를 이끈 김동호 시대도 마감했다. 지난 13일 밤, 한 호텔에서 열린 ‘김동호 페어웰 파티’는 영화인들의 헌사로 가득했다. 아쉬움의 탄식과 감사의 박수가 어우러졌다. 패거리 문화가 판치고, 싸움만 일삼는 영화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그에 대한 오마주는 경계를 넘나든다.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 그렇다. 배우 신성일부터 문성근까지, 임권택 감독부터 이창동 감독까지, ‘플래툰’의 거장 올리버 스톤에서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까지 국적과 이념, 나이와 직역을 넘어 어른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김 위원장은 영화계의 얼굴이자 거장이었던 것이다.
부산영화제 성공의 일등공신인 김 위원장은 문화공보부 사무관에서 시작해 문화부 차관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영화와의 인연은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작됐다. 이때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전문 인력을 키우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한국영화의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다. 이때 양성한 영화인들이 지금 한국영화계의 중추로 성장했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도 자랑거리다. 영화감독이나 영화학 교수가 맡는 집행위원장 자리를 그는 오직 성실과 헌신으로 채워 넣었다. 관리 생활을 오래 했지만 그에겐 관료주의 흔적이 없다. 높은 의자 위에서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눈높이에서 말하고 행동했다. 많은 예산을 집행하면서 청렴의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륙을 넘나들며 구축한 인맥은 부산영화제가 일찍 자리를 잡은 데 크게 기여했다.
‘피프 마스터’ 김동호는 이제 일흔셋의 나이에 15년 간 무겁게 짊어진 짐을 부려놓고 새 길을 찾아 나섰다. 중국의 왕자웨이 감독은 김 위원장에 대해 ‘위대한 소나무’라고 칭송했다. 소나무가 없는 해운대는 당분간 허전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에 뿌린 씨앗은 곧 큰 나무로 자라 해운대를 떠난 그를 더욱 기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