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부 드라마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 굶어 죽는 공포 속 ‘카니발리즘’ 거론
입력 2010-10-16 00:10
전 세계를 감동시킨 칠레 광부들의 인간 승리 드라마 뒤에도 ‘불편한 진실’은 숨어 있었다. 매몰 광부들은 아사(餓死)의 공포 속에 주먹다툼으로까지 이어진 분열과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같은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지상에서 다시 뭉쳤다.
◇극한의 분열과 ‘카니발리즘’=산호세 광산 구조 광부 33명 가운데 28번째로 구조된 리차드 비야로엘(27)은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69일간의 지하생활을 소개했다.
비야로엘은 지난 8월 5일 광산 붕괴로 매몰된 뒤 같은 달 22일 생존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17일 동안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광산 붕괴 사고 직후 작업반장인 루이스 우르수아(54)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음식을 공유하기로 합의했지만 하루 반 스푼의 참치 또는 연어로 연명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다고 비야로엘은 회상했다.
체중 12㎏이 빠졌다고 밝힌 그는 “스스로 자기 몸을 갉아먹는 상태”였다며 굶어 죽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토로했다. 특히 일부 동료들은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농담으로 거론하기까지 했다. 또 살기 위해 기름 냄새가 진하게 나는 오수를 먹어야만 했다.
아사의 공포와 함께 그들을 힘들게 한 것은 갈등과 분열이었다. 이들은 매몰 초기 세 그룹으로 나뉘어 파벌싸움까지 벌였다고 한다. 광부들의 모습이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처음 공개됐을 때 5명이 빠진 채 28명만 화면에 등장한 것은 분열의 한 단면이었다. 화면에 나오지 않은 5명은 하도급 업자와 맺은 별도 계약에 따라 작업하던 사람들로 한때 독자적으로 터널을 파 탈출할 궁리도 했었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그러나 광부들은 구조 가능성이 커지자 지하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비밀로 하자는 혈맹의 서약을 하면서 단결을 모색한 뒤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수입 공동 분배=33명의 광부들이 다시 뭉친 곳은 지하 700m 갱도가 아닌 지상의 병원이었다. 코피아포 시내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며 요양 중인 이들은 환자복을 입고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여전히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클라우디아 야녜스(34)를 비롯해 상태가 좋은 3명은 15일 중 퇴원키로 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는 25일 대통령궁인 라 모네다에서 정부 대표팀과 축구 시합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이기는 팀은 대통령궁에 남고 진 팀은 광산으로 돌아가기로 하자”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또 광부들은 이미 지하에서 각종 TV 출연과 인터뷰를 통해 얻은 수익은 33명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기로 뜻을 모았다고 칠레 일간지 라테르세라가 보도했다. 앞으로의 인터뷰와 TV 출연을 통해 얻게 되는 수입도 마찬가지다. 구조 광부 아리엘 티코나(29)의 형 크리스티안 티코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광부들이 누군가 방송에 나가면 33명 광부를 대표해 나간 것이므로 출연료를 모두 나누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구조 광부 중 유일한 볼리비아 국적인 카를로스 마마니(23)는 일자리와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제의를 뿌리치고 칠레에 남기로 했다. 한편 칠레 광부들이 구조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벌써 이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CNN방송이 전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