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은 머리보다 전사들을 요구하지요”

입력 2010-10-15 17:27


‘실천문학’ 30년만에 지령 100호 16년째 이끌고 있는 김영현 대표

“‘실천’이라는 것은 ‘순수·참여’가 문학 자체를 고립된 어떤 것으로 사회와 분리시키고 도리어 삶과 괴리를 시킨 점이 있었던 것을 한계로 인식한 바탕에서 나온 개념이다.”(문학평론가 박태순)

계간 문예지 ‘실천문학’이 올 가을호로 지령 100호를 맞는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대부분의 문예지가 강제 폐간되거나 정간 당했던 1980년 3월, 이문구 고은 박태순 송기원 이시영 등 가난한 문인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무크지로 출범한 지 30년 만이다. 1995년부터 16년째 ‘실천문학’을 이끌고 있는 김영현(55) 대표를 만나 우리 시대, ‘실천문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창간 당시 이문구 김지하가 40대 중반, 고은은 40대 후반이었지요. 그 분들이 그 시대에 새로운 깃발을 흔든 것이죠. 그러나 그분들이 흔들었던 깃발처럼 세월이 30년이나 흘렀음에도 새로운 깃발을 세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네요. 내 기억 속의 ‘실천문학’은 처음도 가난했고, 나중도 가난했으며, 지금도 가난하다는 것 입니다. 세상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채 무거운 짐을 진 가난한 당나귀처럼 허덕이며 시대의 언덕을 넘어가는 외로운 자화상으로 남아 있지요.”

김 대표가 처음 ‘실천문학’을 찾아간 것은 1984년 겨울. 당시 서울 아현동 쌀집 이층 사무실에서 입주식이 있었다. 비좁은 사무실은 젊은 문인들로 붐볐다. 채광석 이시영 김정환 윤재철 김사인 등이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눈마저 부슬부슬 내렸건만 모든 게 뜨거웠던 시절이지요. 시대도 문학도 사람들도 뜨거웠어요. 그러나 ‘실천문학’ 출범을 문단의 분열이라거나 한국문학의 또다른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요.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의 어른들은 끔찍이도 우리를 견제했지요. 그게 다 그들의 폐쇄성 때문이지요. 돌이키건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작가회의와 ‘실천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쌍둥이 같은 운명이지요.”

‘실천문학’ 대표는 모두 감옥살이의 공통된 경험이 있다. 1985년 7월 자매지로 펴낸 교육전문 무크지 ‘민중교육’은 좌경 혐의로 송기원 주간이 구속되었고 이문구 대표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90년엔 오봉옥 시인의 장시 ‘붉은 산 검은 피’를 문제 삼아 다시 송기원 대표와 오봉옥이 구속되었다. 그 후유증이 가시기 전인 91년 7월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 문제가 되어 이석표 대표가 구속되었다. 대부분이 글쓰기의 자유를 제한받은 데서 비롯된 필화사건이다. 그만큼 ‘실천문학’은 우리 시대의 전위로서 맹위를 떨쳤다. 1980년대에는 외세와 자주의 문제, 리얼리즘 논쟁을 일으켰고 1990년대에는 근대성과 탈근대성,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함께 퇴조하는 민중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담론을 생산했다.

운도 따랐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1986)이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 이어 2000년 들어서는 평전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새빨간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2000)은 우리나라 출판 시장을 휩쓸면서 평전 바람을 몰고 왔다. “이 시대의 확실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였지요. 문학보다도 사회과학적 미학적인 반성에서 더욱 실천적인 것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게 주변부를 만들어내진 못했지요.”

2000년대 중반 이후 ‘운동으로서의 문학’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실천문학’의 입지가 좁아진 게 사실이다. “그 반면에 ‘실천문학’이 상업주의라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천문학’의 존재 자체가 이 시대 상업주의의 높이를 드러나 보이게 하는 측면에서죠.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물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데 그게 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돈을 크게 축적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 지향이 없었다는 것, 그게 ‘실천’의 전통이지요.”

그는 ‘실천’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시대의 모순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교묘해지고 있다”라고 단언했다. 전 세계적인 전쟁, 자살, 소통 부재, 환경문제 등등. 실천적인 층위에서 지식인들이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데 지금은 ‘실천’은 없고 머리만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용산’ 사태가 바로 그것이죠. 지식인들이 현장 쪽에 더 가까이 가 있어야 하지요. ‘실천’은 전사들이 요구됩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