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이 걸어 온 길… 80년 신군부에 의한 문예지 폐간 와중에 탄생
입력 2010-10-15 17:27
‘실천문학’이란 이름이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980년 시인 고은의 작명에 의해서다.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문예지들이 폐간되자 문학평론가 박태순이 아이디어로 낸 것이 ‘무크(MOOK)’, 즉 부정기간행물이었다. 발행주체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편집위원은 고은, 박태순, 이문구, 송기원, 이시영이었다. 해직기자 출신인 박병서가 대표를, 주간은 박태순이 맡았다. 2인 체제는 4년 만에 막을 내린다.
84년 송기원이 주간으로 들어온다. 그는 운영위원을 끌어들여 거금 500만원씩을 갹출시킨다. 이호철, 김주영, 이수인, 오종우, 안종관, 조태일, 장홍주, 김홍신, 김동현, 이시영, 최원식, 이문구 등이다. 당시 이해찬(전 국무총리)도 잠시 편집장을 맡았다.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황금기를 맞이하자 서울 필동에 잔디 정원이 딸린 이층집을 구입해 이사한다. 그러나 자매지인 월간 ‘노동문학’을 ‘샘터’와 같은 판형의 개량주의식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에 반발해 조정환과 김사인이 편집위원을 그만 두고 박노해가 주도하는 잡지 ‘노동해방문학’에 합류한다. 이들이 나가면서 편집위원 전원이 교체된다. 김대환, 허석렬, 김광식, 김사인, 조정환 대신 김태현, 김철, 윤지관, 최두석 등이 들어온 것. 경제학자인 김대환은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다.
월간 ‘노동문학’을 빌미 삼은 국세청의 세무사찰로 필동 사옥은 박원순 변호사가 운영하는 ‘역사문제연구소’로 넘겨진다. 상무였던 이석표가 대표를 맡아 경복궁 옆 적선동, 다방 2층의 비좁은 사무실로 다시 이사를 한다. 하지만 너무 좁아 책을 둘 공간이 없어 다시 옮긴 게 연신내 언덕배기 미장원 3층이었다. 은평구에 살던 이석표의 동문 선배인 이재오(현 특임장관)가 가끔 찾아와 연신내 시장에서 팥죽을 사주곤 했다. 오봉옥, 정지아의 필화 사건 이후 자금에 쪼들리자 다시 서교동 헌 집을 사서 이사를 한다.
이석표 대표가 물러난 뒤 우여곡절 끝에 95년 9월, 116명의 주주로 이루어진 주식회사 ‘실천문학’이 출범한다. 소액주주가 대부분이어서 주금총액은 2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엉뚱하게 음악교재를 찍어내면서 다시 빚더미에 앉았고 사무실은 서교동의 한 교회 복지관 2층으로 바뀌었다. 그해 말, 김영현이 40세의 나이에 대표를 맡아 ‘실천 호’에 몸을 실었고 5년 전 망원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