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들, 어떻게 도울 것인가

입력 2010-10-15 17:20


[미션라이프] 지난해 국내에서 1만2174명이 자살했다. 하루평균 33.3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치다.

지난 7일 최윤희씨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다. 이름 앞에 ‘행복전도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최씨는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자살을 거꾸로 읽어보세요. ‘살자’가 되잖아요. 힘을 내세요. 절망속에서 희망을 발견하세요”라며 사람들을 격려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행복’을 발견하려 했다. ‘울트라 초 긍정’을 강조하던 그녀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실망과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파란리본 카운슬링&코칭 대표 이병준 목사는 “최씨의 자살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동형성’으로 억압된 욕구가 반대 경향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씨는 ‘행복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행복해야해’, ‘행복을 강의하는 나는 우울하지 않아’라는 식의 자기 암시를 했지만 정작 내면 깊숙하게 행복감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에 대해서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역자들 가운데도 극심한 사랑 결핍증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사는 셈이다. 최씨에게 ‘행복전도사’라는 타이틀은 가면이었지 진정한 자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목사는 “이른바 ‘행복전도사’도 얼마든지 우울하고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표현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남편이 동반자살을 택한 것을 두고 ‘순애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에 얼마나 사이가 좋았으면 함께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사는 “부부는 엄밀히 말해 한 몸이 아니며 부부 사이에도 건강한 경계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결혼을 ‘둘이 만나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된 둘이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결혼은 ‘마주보기가 아니라 나란히 보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최씨 남편은 동반자살을 택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해’라며 자살을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가정문화원 두상달 장로는 “긴 인생을 살다보면 불행과 슬픔의 터널을 지날 수밖에 없다”며 “힘겨울 때에 터놓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앙을 통해 ‘고통 가운데 임한 하늘의 뜻’을 생각한다면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자살자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신앙인이라는 점은 더욱 더 안타까운 사실이다. 진새골 사랑의집 이사장 주수일 장로는 “결국 인간은 분명한 한계가 있는 존재”라면서 “인간 스스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는 비록 나가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던 사람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며 “하나님의 의와 뜻을 따르면 행복은 자연히 덧입혀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살예방전문가인 한일장신대 상담학과 김충렬 교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자살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최씨의 자살은 정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병리적 자살”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런 병리적 자살에는 기독교인이라도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밝혔다. 우울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순간적으로 신앙의 위력이 무력화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열왕기상 19장에 선지자 엘리야가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극심한 탈진으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청하며 기도한 것을 들었다. 이때 엘리야는 온 힘을 쏟은 뒤에 오는 깊은 우울증상에 빠졌다. 대선지자였던 그도 그 순간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자살은 대개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해결수단”이라며 “기독교인이라도 우울감의 상태에 있다면 자살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삶에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병준 목사는 “하나님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 관계하는 동물로 만들었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언제라도 마음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풍성한 관계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또 자살충동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치료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발설하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은 때를 기다리고, 말하고 싶은 적합한 상대를 찾고, 상대방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한다. 물론 기도하는 것은 아주 탁월한 치유방법이라고 권했다.

지구촌가정훈련원 이희범 목사는 “삶의 무게를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돌아보지 못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이웃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다면 제2, 제3의 불행한 이웃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