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장엽씨 영결식… 현충원 안장

입력 2010-10-14 21:21


“뜨거웠던 통일염원, 남북 동포 가슴에 살아있을 것 ”

“영원한 밤의 사절이 찾아오는구나.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이 세상 하직할 영이별 시간이라고. 값없는 시절과 헤어짐은 아까울 것 없건만 밝은 앞날 보려는 미련 달랠 길 없어….”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14일 열린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의 영결식에서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 서정수 박사는 황씨가 2008년 세초에 쓴 시 ‘이별’을 낭독했다.

서 박사가 2년 전 황씨에게서 받았다는 시에는 통일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고인의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서 박사가 시를 읽는 동안 한 20대 여성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170석 규모의 영결식장에 빈자리는 없었다. 의자에 앉지 못한 참석자들은 복도에 늘어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무성 정몽준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무소속 이인제 의원, 정문헌 청와대 통일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조사에서 “북한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과업이 태산처럼 남아있는데 벌써 떠나시느냐”며 “선생을 보내야 하는 저희는 참으로 비탄한 심정”이라고 했다.

황씨의 제자 조명철 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울먹이며 추도문을 읽었다. 조 전 교수는 “선생이 가고 남은 것은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해 얼굴을 들지 못하는 이 못난 제자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죄책감뿐”이라며 “부디 자유로운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 달라”고 했다. 2003년 황씨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킨 수전 솔티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은 “북한 주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사람이라면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품 안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적막하던 식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황씨의 수양딸 김숙향씨는 숨죽여 울었다.

영결식이 끝나자 생전 황씨의 경호원들이 관을 옮겼다. 전투복 차림으로 찾아온 인민군 출신 탈북자 20여명은 발인 직전 운구 차량 좌우에 도열하고 거수경례했다.

유해는 오후 3시쯤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묻혔다. 사회공헌자 묘역은 1기당 26㎡ 규모로 대전현충원 서쪽 애국지사 제1 묘역 옆에 있다. 최근 별세한 황인성 전 국무총리와 주재황 전 대법관도 이날 황씨와 같은 묘역에 안장됐다.

200여명이 참석한 안장식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관 위에 흙을 뿌린 수양딸 김씨는 “고인의 삶은 슬프기만 했다”며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한 동포의 가슴에 늘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욱 민주주의이념연구회장은 “황장엽 통일평화재단을 만들어 그의 사상을 전파하고 세계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대전현충원은 황씨의 묘를 전담하는 방범용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비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강창욱 기자, 대전=정재학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