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불똥’에 또 손 놓은 물가

입력 2010-10-14 21:15


“8∼9월은 미국 경기불안에, 10월은 환율전쟁 때문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이 해외요인에 휘둘리고 있다. 금리를 올릴 경우 최근 가팔라진 원화가치 급등세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달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물가안정이 존재이유인 중앙은행이 해외요인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다. 미국, 유럽연합(EU)의 경기둔화 움직임으로 상당기간 세계 경제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란 점에서 올해 안에 추가 금리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전쟁 대비 먼저, 금리인상은 나중’=“최근의 국제금융 상황이 굉장히 절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금통위원들이 이를 고려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 발언을 통해 환율전쟁이 금리동결의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 지난달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환율전쟁은 한국에 직격탄이 됐다. 9월 1일 1184.7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14일 1110.9원으로 한 달여 만에 70원 이상 급락(원화가치 상승)했다. 이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양적 완화조치로 선진국에서 빠져 나온 자본들이 상대적으로 돈값이 높은 우리시장으로 밀려들어오고 이는 다시 환율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가는 포기? 한은 신뢰 추락=하지만 최근의 잇단 금리동결에 대해 “한은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금통위가 금리 결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물가부분이어야 하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농산물 가격상승률은 지난해 동월대비 32.7%나 됐다. 한은도 자료에서 “앞으로 수요측면의 상승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시했다. 물가 우려를 알고 있음에도 금리 결정 순간에는 변수가 되지 못했다.

이 와중에 김 총재와 한은의 신뢰도는 떨어졌다. 김 총재는 지난달 한은 연수원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우측 깜빡이(금리인상 시그널)를 켜면 우회전한다”고 언급,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해외요인의 경우에도 김 총재는 “세계경제의 더블 딥(이중침체) 우려는 없다. 완만한 회복세다”라는 낙관론을 자주 폈다. 결국 이 발언은 8월 이후 금리 결정일만 되면 허언으로 드러났다. “김 총재 말은 못 믿겠다”는 시장의 불신을 부채질한 셈이 됐다.

◇연내 금리인상 어려울 듯=해외요인에 경도된 금통위의 태도를 보면 연내 금리인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달 G20 정상회의는 환율전쟁에 대한 명쾌한 해법과 조정보다는 이전투구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13일 의장국인 한국에 대해서 “환율 개입 자제하라”고 공세를 펴는 등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연말로 갈수록 대내외 여건이 더 불안할 것으로 보이는데 금리를 올릴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라 증권은 내년 2분기까지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