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 예보, 한국만 하는 무모한 도전

입력 2010-10-14 21:35


지난 12일 찾아간 서울 회기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농업관측센터장실은 어수선했다. 구석 테이블에는 하루 전 발령받은 신임 센터장의 짐이 수북이 쌓여 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서류박스와 개인소지품 같은 것들. 짐 정리도 안 끝났는데 업무는 밀려드는 모양새다. 상황을 보고하는 직원들이 뻔질나게 오가는 사이, 책상 위에서는 유선전화와 휴대전화가 번갈아 울렸다.

올 가을 대한민국을 강타한 배추파동. 와중에 센터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김명환(56) 전임 센터장이 11일 복귀했다. 센터 출범을 함께한 원년멤버이자 농업관측 분야 전문가. 배추파동을 수습할 구원투수였다.

“금년은 워낙 맞추기 어려웠어요.”

지난달 1일 농업관측센터는 ‘농업관측 9월호’를 냈다. 매달 1일 쌀, 콩, 양파, 사과, 감자, 버섯 등 31개 농축산물의 생산 및 출하량과 가격 등을 예측하는 관측 보고서. 농가는 그걸 보고 파종이나 출하 일자를 조정했다.

때는 고랭지작물이 한창 출하되던 시점. 당연히 관심은 배추 무 등 고랭지채소에 쏠려 있었다. 월보가 예상한 9월 배추 가격은 10㎏당 상품(上品) 기준 6500원. 이런 해설이 붙었다.

‘배추 9월 가격은 출하량 감소로 작년보다 강세 전망. 그러나 기온 하락으로 작황이 호전되고 준고랭지 2기작 배추도 출하되면서 8월 대비 약보합세 전망.’ 8월 평균값이 6662원이었으니 약보합세로 가격이 다소 떨어진다는 9월에는 6500원이 예상된 것이다.

이 예측이 얼마나 틀렸는지, 지금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배추 9월 평균가격은 1만6519원. 예상가의 2배가 훌쩍 넘는다. 오보는 9월호에 그치지 않았다. 10월호 역시 과녁을 한참 비껴갔다. 이미 배추가격이 9월 27일 3만6000원(10㎏)까지 폭등한 상황이었는데 월보는 10월 배추 예상가를 1만3000원이라고 발표했다. 두 건의 보고서는 이달 초 국정감사에서 융단폭격을 맞았다.

9, 10월 보고서를 하나씩 짚어보던 김 원장은 “맞아요. 워낙 많이 틀렸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변명과 해명이 절반쯤 섞인 긴 설명을 시작했다.

“9월 1일자, 이거 엄청 틀린 건 맞아요. 근데 이때는 (틀린 게) 당연해요. 보고서 내려면 그 전달에 조사, 분석을 해요. 9월 1일자는 8월 중순과 하순에 하는 거죠. 그거 할 때는 태풍도 없었고, 추석연휴에 그 많은 비가 올 줄 상상도 못했어요. 그냥 평년기상으로 분석했으니 틀린 게 당연해요. 전화조사할 때도 작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졌다고 답한 샘플농가가 없었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월보 발표한 그날, 태풍 곤파스가 왔어요. 그러면 바로 속보를 만들었어야 돼요. 추석 때도, 폭우가 쏟아진 후에라도 근무했으면 좋았을텐데.사실 그동안 일 생기면 속보를 내왔어요. 쭉 그런 식으로 해왔는데, 이번에는 일이 안되려고 그랬는지….”

관측보고서는 전달 조사한 것을 다음달 1일 낸다. 중순 무렵 10일간 산지 농가들을 상대로 전화설문조사를 한다. 품목별로 500∼1500가구 규모. 이게 끝나면 담당자들이 주산지를 방문해 직접 확인하고, 농협 등 현지 전문가도 인터뷰한다. 이걸 취합한 뒤 분석, 자문을 거쳐야 최종 보고서가 나온다. 하지만 전달에 조사가 아무리 철저했다 한들, 오지 않은 태풍과 비를 미리 알 길은 없다. 틀린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후속조치가 미흡했다, 그런 얘기다.

10월호가 엇나간 사연은 이랬다. “10월 1일자는 점(點) 예측의 문제예요. 만약 ‘배추 값이 상순에 3만원대에서 중순에는 2만원대가 되고 하순에는 1만원대로 떨어집니다.’ 이렇게만 썼으면 괜찮았을 걸, 10월에 가격이 죽 떨어질 걸 예상하고는 그걸 평균 내서 ‘1만3000원’ 이렇게 점으로 딱 찍어서 발표하니까 ‘에이, 이 친구들 또 틀렸네’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가격 등락이 심할 때는 보통 상순, 중순, 하순을 나눠서 전망해요. 그게 맞죠. 근데 이번에는… 암튼 뭐가 씌었는지 다 어긋났어요.”

10월호는 기술적 오류였다는 해명이다. 틀린 게 아니라 전달에 오해가 생겼다는 것. “지금도 10월 배추 평균값은 그 정도 갈 거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농업관측의 애물단지, 고랭지배추

오래 전부터 여름배추는 관측센터의 골칫거리였다. 센터의 관측 성공률은 80%쯤 된다.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성적표. 하지만 채소 관측, 그중 고랭지배추 전망에는 유독 오보가 많았다. 심지어 너무 많이 틀려서 김 센터장이 “농가나 상인들도 고랭지배추 가격 전망은 다들 잘 안 믿었어요. 그걸 누가 알겠어, 다들 그랬지”라고 할 정도다.

“솔직히 이거 자주 틀렸어요. 7월 게 틀리든, 8월 게 틀리든, 9월 게 틀리든…. 매년 틀렸는데(8∼10월 출하되는 고랭지배추 관측은 7∼9월호를 통해 한다) 금년은 아주 제대로 틀리고 집중포화를 맞은 거지요.”

여름에 나는 배추는 강원도 평창, 태백, 홍성 등을 산지로 하는 고랭지배추밖에 없다. 배추의 적은 고온과 물. 더우면 망가지고 물 많으면 썩었다. 변덕 심한 여름 날씨에 작황은 매년 들쭉날쭉했다. 더군다나 나는 곳이 한 지역이어서 가격 충격을 완충해줄 대체 물량도 없다. 당연히 가격은 널을 뛰었다. 비슷한 이유로, 여름 호박과 오이도 관측 전문가에겐 지뢰밭이다. 그는 “제일 심한 게 상추다. 아직 상추는 (관측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그건 꽤 솔직한 고백이었다. 사실 채소 관측은 농업관측의 역사가 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도 섣부르게 나서지 않는 분야다. 김 센터장은 “채소 가격을 월별로, 그것도 몇 ㎏에 얼마 하는 식으로 콕 찍어서 예측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했다.

채소류는 날씨에 민감해 생산량 전망에서 곡물 같은 정확도가 나오지 않는다. 가격 전망이 맞을 확률은 더 낮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채소 가격 전망은 실험단계이거나, 시도하더라도 장기추세 정도만 알려준다. 오를 것 같다거나, 내릴 것 같다는 식. 세계 어디에도 ‘다음달 배추 값은 6500원’ 하는 식으로 월별 예보를 하는 나라는 없다.

오보 위험을 알면서도 채소 관측을 용감하게 밀어붙이는 이유. 그건 대한민국에서 관측이 시작된 이유와 관련 있다.

“채소 관측은 우리나라가 참 특이한 케이스예요. 관측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채소 값은 항상 문제였어요. 이게 만날 등락을 하니까. 한국 사람은 김치를 꼭 먹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배추 무 양파 마늘 이런 품목은 수급 안정이 중요한데, 남으면 폐기하고 적으면 수입하는 거 말고 대책이 없으니까. 미리 조치하자는 문제제기가 늘 있었어요. 사전에 농가에 덜 심으시오, 더 심으시오 사인을 주면 가격 등락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의 필요성이 채소에서 제기됐으니 아무리 위험해도 채소는 포기할 수 없었다. 1999년 농업관측센터는 배추, 무, 건고추, 마늘, 양파, 대파, 사과, 배, 포도 9품목으로 관측을 시작했다. 시작의 3분의2가 채소였던 셈이다.

“가을배추, 폭락 폭등 없을 겁니다”

무모와 용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법이다. 계속 틀리는 한 용감하게 시작한 채소 관측은 무모한 도전이 돼버리고 만다. 센터는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 평년 기상을 기준으로 한 가지 시나리오만 제시하는 점 추정에서 구간 추정으로 관측 방식을 바꿀 계획이다. 기후가 좋을 경우, 평년일 경우, 나쁠 경우 3가지를 대입해 각각 전망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방향을 명확히 잡아야겠죠. 이를테면 태풍이 오고 위험신호가 울리기 시작하면 즉각 그래프를 수정 발표하는 겁니다. 위기대응 매뉴얼도 만들어야겠지요. 1단계에서는 수급대책반을 가동하고 더 위험해지면 해외시장 조사를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김 센터장은 99년 관측센터 설립 때 품목관측팀장을, 이어 채소팀장(2000∼2002년), 농업관측센터장(2005∼2007년)을 차례로 지냈다.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농업관측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 현재 센터에서 쓰고 있는 분석모형 5가지 중 3가지 개발에는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그가 긴 자기점검의 시간을 예고했다. 그는 “관측이 틀린 건 철저하게 우리(센터) 잘못이다. 우리가 덜 노력했다. 표본농가에 문제가 있는지, 집계방식이 잘못됐는지, 분석 툴의 오류인지. 이 참에 우리 잘못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체크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계속 틀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언젠가는 맞춰야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김장배추 수급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가을배추 재배의향면적이 4∼7% 낮아졌어요. 태풍이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가을배추 파종 시기를 놓친 농가도 많을 겁니다. 출하량이 줄고 가격도 높게 형성되겠지만 폭등하지는 않을 거예요. 가을배추는 기상을 별로 타지 않아서 작황이 급격히 나빠지는 일이 드뭅니다. 가을배추 수확이 늦어져서 겨울 월동배추 출하시기와 겹칠지 모른다는 걱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 폭락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