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성기철] 정무장관이 아니라 특임장관이다

입력 2010-10-14 17:40


이재오 특임장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전 6시30분이면 청사로 출근한다. 간부회의는 7시30분에 열린다. 다른 부처 장관들이 출근도 하기 전에 회의를 끝내는 셈이다. 아침에만 부지런한 게 아니라 일과시간에도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다.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그랬던 것처럼 발로 뛰는 현장행정을 실천하고 있다. 국회와 정당은 기본이고 종교계 경제계 노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야말로 광폭행보다.

현장에 가지 않고서는 문제의 본질도, 적절한 해법도 찾을 수 없다는 게 이 장관의 지론이다. 그는 얼마 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특임장관실의 현장은 나라 전체입니다. 특히나 대통령의 특임을 수행하는 기관인 만큼 대통령의 생각이 미치는 곳, 대통령의 눈길이 가는 곳은 모두 특임장관실의 현장입니다.”

현장행정 국민 박수 받을 일

회전의자에 눌러앉아 편하게 일 봐도 될 60대 중반의 고관대작이 몸 사리지 않고 현장을 누비는 데 대해 다수 국민은 박수를 칠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장관들도 좀 따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게다. 그의 활동상을 대권행보라며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나 지나친 해석이다. 설령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시비 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장관의 마당발식 ‘광폭행정’이 과연 특임장관 본연의 모습인지 한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로 특임장관실이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기능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장관은 특임장관실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특임장관실이 해야 할 일을 국회와 정부 간 가교 역할, 국민통합을 위한 소통 창구 역할,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주요 사무 등 세 가지로 정리해 놨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제17조 특임장관 규정은 이렇다.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 또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특히 지정하는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1명의 국무위원을 둘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특임장관실의 임무는 이 장관이 설정한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 한 가지에 해당된다. 앞의 두 가지는 특임장관실에 부여된 임무라고 보기 어렵다.

일국의 장관이 법 규정에 얽매여 소극적으로 일하는 걸 나는 원치 않는다. 한데 이 장관이 정부조직법에 규정된 고유 업무보다 과외(課外)의 일에 너무 치우친다는 느낌이 들어 개운치는 않다.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를 보는 데 더 진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회와 정부간 가교 역할, 그리고 국민통합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 있다 없어진 정무장관실의 이름에 걸맞은 업무다. 이 장관의 업무 내용과 스타일을 보면 정무장관을 세 번이나 지낸 고 김윤환 의원을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그 두 가지 업무는 담당기관이 따로 있다. 대 국회 및 정당 업무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국민통합 업무는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더구나 국민통합 업무는 고건 전 총리가 위원장인 사회통합위원회의 핵심 영역이기도 하다.

특별한 국정과제 더 신경 써야

이 장관은 정무장관이 아니라 특임장관이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애쓰다 보면 정작 본래 임무에 소홀해질 수가 있다. 솔직히 말해 일 욕심 너무 안 냈으면 좋겠다. 대신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특별한 과제를 맡길 필요가 있다. 개헌도 좋고, 행정구역이나 선거구제 개편도 괜찮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육개혁 같은 것도 특별한 사무에 해당될 수 있다. 국정 난제 한두 가지만 깔끔하게 해결해도 훌륭한 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처럼 종횡무진으로 뛸 경우 ‘특임 총리’ ‘왕 장관’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