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아, 어리구나”… ‘김정은花’는 아직 없었다

입력 2010-10-14 18:10

쓰가와 다카후미 日 TBS 워싱턴 특파원

내가 본 北 후계자 김정은


9일 토요일 오후 1시, 쓰가와 다카후미(45) 일본 TBS 워싱턴 특파원은 베이징을 출발하는 평양행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북한의 취재 허용 소식은 갑작스레 날아들었다. 급하게 중국에 간 그는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해선 “노코멘트”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18개국에서 기자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비행기 좌석이 모자라자 오후 1시30분 고려항공 측이 비행기를 한 대 더 배정했다. 특별기를 동원한 셈이다. 기자들은 2시간 뒤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나흘간 평양에 머물며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을 취재하고 13일 일본 도쿄에 도착한 쓰가와 기자와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40m 거리서 본 후계자

“(취재 환경이) 상당히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10일 오전 김일성 광장. 취재는 김일성과 김정은의 코앞에서 진행됐다. 군인 행렬에서 불과 2∼3m 떨어진 곳에 외신기자들을 위한 취재구역이 마련됐다.

“생각보다 무척 가까운 자리였습니다. 행진하는 군인들 바로 옆이었죠. 단상에서도 40여m밖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단상에 서 있는 김정일, 김정은의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였다. 기자단은 오전 6시30분 숙소인 고려호텔을 나섰다. 승용차와 버스에 나눠 탔다. 기자단을 태운 차량은 일렬로 평양시내를 달렸다. 기자들에게는 ‘기ⓟ자’라는 완장과 ‘초대장’이라고 찍힌 붉은 색 티켓이 배부됐다.

현장에선 리허설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현장 경비는 정말 삼엄했어요. 금속탐지기를 동원해 샅샅이 몸을 뒤졌습니다. 라이터 1개조차 반입되지 않았습니다.”

리허설은 1시간 이상 걸렸다. 마침내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을 직접 봤을 텐데, 인상이나 느낌이 궁금합니다.

“첫 느낌은 ‘아, 어리구나’였습니다. 북에서는 그를 ‘청년장군’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럴 만했습니다. 유달리 하얀 얼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군인이나 민간인들은 얼굴이 까무잡잡한데 김정은은 그렇지 않아서 그의 하얀 얼굴이 더 돋보였습니다.”

하얗고 살이 오른 김정은과 달리 김정일은 약간 불편해보였다. 손으로 난간을 짚고 걷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건강해보였습니다. 원래 이런 퍼레이드에선 항상 단상 위를 좌우로 걸어다니곤 하는데 이번에는 몸이 좋지 않다기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지 궁금해서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행사는 1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김정일은 행사가 끝날 때쯤 의자에서 일어났다.

“단상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일어나 왼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오른쪽 끝까지 걸어갔어요. 그러곤 다시 한가운데로 돌아왔죠. 모두 10분 정도 걸은 것 같습니다. 컨디션을 회복했다는 걸 드러낸 셈이죠.”

달라진 북한

“위대한 수령이고 젊으신 그 모습이 한눈에 막 안겨오면서…(울먹) 수령님에 대한…그(울먹)…그리운 심정을 뭘로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었고….”

쓰가와 기자와 인터뷰하던 북한 주민은 울먹였다. 열병식 퍼레이드에서 만난 주민이었다. 주민들의 반응은 죄다 이런 식이었다.

“늘 북한이 하던 말과 다른 얘기는 들을 수 없었지요. ‘세대를 이어서 혁명을 완수한다’는 식의 이야기만 반복했어요.”

북한은 18개국에서 찾아온 외신기자들에게 통역을 모두 제공했다. 통역원이자 수행원인 이들은 기자들이 어딜 가든 함께했다.

“취재 현장 인근에 있는 주민들만 취재가 가능했어요. 예를 들어 퍼레이드 취재를 나가면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식이죠. 하는 대답은 다 똑같고요.”

기자들은 식사를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호텔에서는 아침 식사만 제공했다. 호텔 내부 식당이나 호텔 주변 식당을 이용했는데, 그럴 때도 수행원들은 따라다녔다. 하지만 분위기는 편안했다.

“먼저 말을 시키지 않아도 (수행원들이) 인사를 먼저 건네는 등 일상적 대화는 편하게 나눴어요.”

짐작보단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프레스센터에서는 햄버거, 롤케이크 등 간식이 제공됐고 전화와 인터넷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회선이 많지 않았지만 인터넷은 자리만 나면 언제든 쓸 수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은 아니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한번은 시내에서 이동하던 중에 기자들을 태운 차가 잠깐 멈춰 섰어요. 그때 기자들이 차에서 내려 마음대로 주변을 촬영하고 그랬는데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더군요. 기자들 수가 북한 당국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던 것 같아요.”

통제의 나라 북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북한이 ‘이전과는 다르다. 무리를 한다’는 느낌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 기자가 ‘위험하고 귀찮은 북한이 군사력을 과시하는 퍼레이드를 했다’고 신랄한 멘트로 보도했어요. 그 멘트를 녹화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북한 측 관계자가 얼굴을 찡그리더군요. 하지만 보도를 막지는 않았어요. 기사를 검열하거나 취재한 비디오를 보여 달라는 얘기도 없었습니다.”

김정은을 홍보하라

김정은을 알리려는 북측의 노력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쓰가와 기자는 9일자 노동신문을 예로 들었다. 9일자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새로 건립된 국립연극극장을 돌아보시고 갓 입사한 예술인들의 가정을 방문하시었다.’

“1면 머리제목 아래 사진이 두 장 있어요. 왼쪽은 김정일을 중심에 놓고 찍은 사진, 오른쪽은 김정은을 중심에 놓고 찍은 사진이에요. 김정일과 김정은 사진을 나란히 실은 거죠. 후계자 홍보 활동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완성 단계는 분명 아니었다. 11일 꽃 가게를 방문했을 때다. 점원은 쓰가와 기자에게 김일성화(花)와 김정일화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김일성화는 김 주석이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수카르노 당시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난(蘭) 종류의 열대식물. 김정일화는 1988년 2월 김 위원장의 46회 생일 때 일본 식물학자가 선물한 베고니아과의 식물이다.

“김정은 꽃은 없습니까?”

점원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없다”고 했다. 김정은이 아직 그 정도 위치까지 이른 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서방 언론을 대거 초청한 이유는 분명 김정은 홍보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도도 읽힌다고 쓰가와 기자는 말했다.

“미국 언론을 대거 초청한 건 오바마 정부에 대화 의욕을 전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군사 퍼레이드를 과시한 것은 ‘우리 뜻대로 안 풀리면 힘을 쓸 수도 있다’는 메시지겠죠.”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