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끔찍하고 거룩한 삶
입력 2010-10-14 17:42
새파란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고 다 떨어지면 쓸쓸하겠지요? 택시를 탔는데 문득 앞자리의 기사 아저씨가 내뱉는 독백이 마음의 빈자리를 휘감는다. 창밖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가로수 이파리들은 숙명적으로 이 계절을 받아들이는 듯 노랗게, 붉게 물들어간다.
소설가 김도언은 그가 펴낸 문학일기 ‘불안의 황홀’에서 삶은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완성되거나 종료된다고 말했다. 그 네 가지 단계는 ‘욕망, 투쟁, 성찰, 화해’인데, 작가는 이를 두고 ‘진화의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네 가지 단계를 균등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욕망과 투쟁은 길고 성찰과 화해가 짧은 사람도 있을 테고, 욕망과 투쟁과 성찰은 있으나 화해 없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이 다르듯 사람마다 살아가는 인생의 무늬도 다르리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사소한 것에 더 욕망하고 투쟁하며 살아간다.
지난주 ‘행복 전도사’ 최윤희 선생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을 들은 뒤 며칠간 멍해진 가슴을 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나면 까르르 밝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내가 원고 청탁을 드려 ‘출판저널’에도 칼럼을 쓰셨던 터라 충격이 꽤 컸다. 그때 최윤희 선생이 쓴 글의 내용도 우리에게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요즘 모두 다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힘든 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똑같은 소금을 뿌려도 팔팔 살아나는 미역이 있는가 하면 노릇노릇 시들시들 죽어버리는 배추도 있다. 똑같은 바람이 불어도 침몰해 버리는 배가 있고 오히려 쾌속 항진하는 배도 있다. 삶의 벼랑에서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선생도 분명 힘들고 지치고 삶의 벼랑에서 휘청거렸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행복 전도사’로 부르면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그도 또 다른 행복 전도사로부터 위로와 안식을 얻고 싶지 않았을까. 가슴깊이 선생이 다른 세상에서는 기꺼운 행복을 가득 누리시길 빈다.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먹고 산다. 타인의 욕망이 마치 내가 욕망하는 것인 양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 욕망이 내가 아닌 타인의 욕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에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때 성찰과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온 윤대녕 소설가의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서 그는 “문학으로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날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고 고백하면서 “삶은 끔찍하고도 거룩한 것. 그러나 그 앞에서 굽히지 말고 온몸으로 다시 버틸 것”이라고 담담하게 적었다.
새파란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고 다 떨어지면 쓸쓸하겠지요? 독백처럼 들리던 질문에 나는 끔찍하고 거룩한 삶 앞에서 무던히 잘 버텨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