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빵 굽는 ‘빨강마차’ 6호점 사장님 김용씨 인생 재역전
입력 2010-10-14 20:52
6년 전만 해도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운영하던 사업체가 어려워지면서 그는 한 순간에 곤두박질쳤다. 가정도 깨졌다. 더 이상 아버지의 자리, 남편의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괴로운 마음에 가출했고,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도박으로 탕진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목숨은 보존해야 됐기에 닥치는 대로 노동판에 나갔다. 일당을 받고 하루 7000원 하는 쪽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거리로 나갔다. 4년 넘게 그 생활을 하다보니 치아는 다 빠지고, 말은 어눌해졌다. 어느새 웃음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하하!”
얼마만에 웃어보는 건지. 빠진 치아를 보이고 싶지 않아 좀처럼 웃지 않던 그가 웃음을 되찾았다. ‘구세군과 함께하는 빨강마차’ 6호점 점주로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김용(60)씨 이야기다.
그는 구세군대한본영(박만희 사령관)에서 운영하는 자활쉼터 구세군서대문사랑방에 기거한다. 2년 정도 됐다. 신앙생활은 이곳에서 처음 시작했고,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우며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구세군식 인사법도 어느새 몸에 익었다. 특히 그는 예수님을 믿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
서대문사랑방에 머물며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일했다. 은평의마을, 강서장애인자활센터에서 그는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었다. “한때는 커피를 마시러 호텔만 다닐 정도로 잘나갔었는데… 그땐 이런 생활 꿈도 꾼 적 없지요. 그런데, 이렇게 비쩍 마른 몸으로 장애우들 번쩍 안아 목욕시키고, 냄새나는 방을 순식간에 윤기 나게 닦아내는 저를 보며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해요.”
은평의마을에서 6개월 넘게 근무하고 장애우들과 헤어질 땐 서로 붙잡고 울었다. “뎐상님(선생님) 고마어여(고마워요)라고 말하는데… 어휴, 지금도 목이 메어요. 그들은 내 가족입니다.”
복지시설에서 일하고부터 김씨는 달라졌다. 마음보다 불편한 몸이 앞섰다. 힘들게 물건을 들고 가는 노인을 발견하면 60세 김씨가 달려가 짐을 나눠 든다. 경로석도 양보한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은 예사다. 그렇게 사랑의 마음을 한평 한평 넓혀가자 김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서대문사랑방에서 실직자들의 자립을 돕는 ‘빨강마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거였다. 빨강마차는 일종의 ‘풀빵 카트’다. 휘슬러코리아가 기존의 풀빵이나 붕어빵이 아닌 구세군의 상징인 종 모양 빵틀을 설치하고, 카트도 구세군 자선냄비를 떠올리는 빨간색으로 단장해 이동식 점포로 제작, 지난 6월 10대를 구세군에 전달했다.
김씨는 빨강마차의 주인이 되기 위해 다른 ‘사장님’들과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휘슬러의 지원으로 예절 및 위생 교육, 요리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았다. 또 휘슬러 요리팀에서 제공한 식재료로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린 서울디자인 한마당에서 직접 종빵을 구워 판매했다. 빨강마차 두 대로 700만원 넘게 매출을 올렸다.
이제 마차를 끌고 현장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장소 섭외가 문제였다. 빨강마차는 비록 거리에서 운영하지만, 사유지를 무상 임대받아 적법한 장소에서만 장사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이를 위해 서대문사랑방 원장 백승열 사관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지하철에서 가까운 할인마트, 전자매장, 은행, 음식점…. 작은 마차 하나만 세울 수 있는 공간이면 되는데, 선뜻 내주는 이가 없었다. 백 사관은 “뜻있는 분들이 공간만 기부해주면 2∼3년 내에 100대의 빨강마차를 운영해 실직자들에게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고 호소했다.
13일 빨강마차 발대식에서는 당초 10호점까지 내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 서울 대학로, 왕십리, 망우동, 목동, 홍제동, 충정로 등에서 8대의 빨강마차 운영을 시작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빨강마차 6호점은 서울 염창동 LG전자 강서본점 주차장 한쪽에 자리 잡았다. 개업식 날, 그는 하얀 셔츠에 이름표가 부착된 빨간 조끼, 나비넥타이, 하얀 캡을 쓰고 종빵을 구웠다. 10여분 후 구수한 종빵 향기가 퍼져나갔다. 김씨가 “오늘은 무료 시식입니다”라고 외치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맛있다. 사장님, 내일부터 많이 사갈게요”라고 약속했다.
활짝 웃던 김씨가 문득 말했다. “따뜻할 때 가족에게 먹이고 싶네요. 은평 장애인 친구들과 아내, 우리 애들한테도요.” 그는 언젠가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안고 종빵을 굽고 있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