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선진 녹색국가, 한국?
입력 2010-10-14 18:06
한국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서울시의 친환경 도시 건설, 에너지 절약 캠페인, 비닐봉지 줄이기, 음식 쓰레기 줄이기는 하나같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좋은 정책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얼마 전에 나온 조사 결과를 보니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1.7배다. 세계 제일의 에너지 낭비 국가인 미국을 앞서는 수치다. 서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 통계는 당연한 귀결이다. 여름에는 너무 춥고 겨울에는 너무 덥게 맞춰진 실내온도, 사용하는 사람도 없이 논스톱으로 켜져 있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한밤중까지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빌딩의 전등.
우리 동네 쓰레기통에서도 한국의 환경 인식이 보인다. 왜 바나나 껍질이 재활용쓰레기 속에 들어가 있는지, 왜 종이가 일반쓰레기에, 유리조각이 음식물쓰레기에 섞여 있는지 모를 일이다. 또 서울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왜 그렇게 많은가. 도로의 평균 주행속도가 30㎞ 이하고 웬만한 곳은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는 도시에서 그렇게 기름 많이 먹는 육중한 자동차가 왜 필요한가. 아니, 서울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에서 자가용이 필요하기는 하단 말인가.
한국 친구들과 환경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꼭 이런 주장을 듣게 된다. 그동안 미국과 서유럽의 낭비적인 생활방식이 현재의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냈고 이제는 한국도 그런 호사와 편의를 누릴 차례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책임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 똑같이 행동해도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논리는 마치 마약에 빠져 인생을 망친 형을 보면서 왜 형은 해도 되고 나는 안 되냐며 마약에 손대는 10대의 억지와도 같다.
기후변화나 환경파괴 같은 문제는 그 결과가 어디까지 뻗칠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편의를 위해 다수의 생존 조건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유럽연합(EU) 국가들, 호주,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한 17개 나라가 전체 온실가스의 80%를 뿜어내고 있다. 이런데도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에서 주도하는 친환경 생활 캠페인도 좋다. 그러나 정부 홀로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우리 모두 동참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기, 되도록 쓰레기 만들지 않기, 물과 전기 아껴 쓰기, 유기농 식재료 사용하기, 대단위 농지에서 산업적으로 재배되는 농수산물 사지 않기 등 작은 실천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일, 내년 혹은 2020년이 아닌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몰디브의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드는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대책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딸이 둘 있는데 꼭 손자 손녀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한다면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