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캐릭터, 완벽한 허구의 인물인데… 실존인물과 연결시켜 제작에 굉장한 부담”

입력 2010-10-13 20:38


드라마의 일부 캐릭터가 실존 인물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방송계가 시끄럽다. 허구인 드라마 속 인물이 실제 인물과 공통점이 있으면, 시청자가 드라마를 실제로 여기거나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에 대처하는 제작진의 자세를 여러 드라마를 통해 살펴봤다.

KBS 1TV ‘웃어라 동해야’는 지체장애인 엄마를 둔 청년 동해(지창욱)의 사랑과 일을 그린 일일 드라마다. 문제는 한국인인 동해가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라는 것.

지난 6일 한국계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인 사이먼 조의 가족 측은 제작진에게 “주인공 이야기가 사이먼 조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인식할 개연성이 많다. 동해의 출신 성분이나 스토리 전개 등이 사이먼 조의 경우와 많이 달라 그의 이미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제작진은 사이먼 조의 가족에게 드라마의 취지를 설명해 오해를 풀었다. 문보현 CP(책임PD)는 “드라마와 사이먼 조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설명했다. 단지 미국에서 산 동양인이란 인물을 설정한 뒤 그의 재능을 찾다가 스케이트가 적당할 것 같아 설정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SBS ‘자이언트’는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극적으로 전개되면서 실화보다 ‘픽션’의 느낌을 강화한 덕분에, 방송 초기 일었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이강모(이범수)가 건설업에서 성공한다는 설정 때문에 방영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신화를 그린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강모 외에도 조필연, 이미주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누가 봐도 허구임을 알 수 있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대한 정치적 해석 때문에 곤혹스러운 SBS ‘대물’ 제작진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소재로 개연성은 확보하면서, 극적인 느낌을 더하겠다는 입장이다. 극중 최초의 여자 대통령으로 나오는 서혜림(고현정)이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연상시킨다거나, 거대 정당으로 등장하는 ‘민우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연상시킨다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구본근 SBS CP는 “앞으로 보궐선거, 도지사 선거 등 서혜림의 다양한 정치 인생이 펼쳐진다. 이를 보면 서혜림은 완벽한 허구의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면서 “자꾸 드라마를 현실 정치와 연결지어서 바라보는 시각은 드라마 제작에 굉장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도 “단순한 오해를 넘어 드라마를 바깥(현실)과 연결지어서 얘기하고, 모든 장면을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시선은 제작 방향에 영향을 미쳐, 오히려 작품을 엉뚱한 드라마로 변질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