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글공정에 반격 나섰지만… 제조업체 이해관계 복잡 15년째 입씨름
입력 2010-10-13 21:22
정부가 휴대전화 등 모바일 기기의 한글자판 표준화 사업을 서두르기로 했다. 중국의 ‘한글공정’ 사업(본보 10월 13일자 8면 보도)이 본격화되자 뒤늦게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추진 일정도 세우지 못한 데다 국가표준(KS)을 만들기 위한 이해당사자 간 기초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해 국제표준 등록의 길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뒤늦은 강경 대응=허경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장은 1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새로운 모바일 기기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다음달부터 한글자판 표준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 원장은 “방송통신위원회와 공동으로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15차례 자판 표준화를 위한 기술적 검토 등을 수행했다”며 “특허권 양도 협상, 관련 업체 간 이견 조정, 대국민 공청회를 거쳐 이른 시일 내 국가표준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기표원은 휴대전화 업계가 양보하지 않을 경우 휴대전화 자판입력 방식을 산업표준화법에 따른 ‘통일·단순화’ 품목으로 지정, 강제로 표준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허 원장의 발언은 중국의 한글공정과 관련한 논란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표원 관계자는 “휴대전화 한글자판 입력 방식을 정하는 것은 국가표준을 정하는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며 “정부가 마냥 손놓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뜻이지만 국제표준 등록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자판 표준화 산 넘어 산=정부는 1995년부터 15년째 휴대전화 자판 표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55%) LG전자(15%) 팬택(13%) 등이 자사 한글입력 방식의 우수성을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모토로라 노키아 등 국내 진출 외국 업체도 별도 한글입력 방식을 만들어 협상에 참여해 특허권을 주장하고 있다.
기표원은 현재 내부 회의를 거쳐 휴대전화 자판 표준 입력방식 선택을 위한 평가항목 25개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평가항목을 휴대전화 업계가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실제 시장점유율에 따른 가산점 부여 방식에도 점유율이 낮은 업체들이 반발하는 상황이다.
기표원 관계자는 “업체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평가항목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며 “현재 만든 평가항목 수도 달라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 간 합의를 위해 표준안 기업의 특허 로열티 비용을 낮추는 방안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표원은 한글입력 방식을 단일표준이 아닌 2∼3개 이상 자판 입력 방식으로 정하는 복수표준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중국보다 앞서 한글입력 방식을 선점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국제표준화기구가 세계시장 점유율이 낮은 한글입력 방식에 2개 이상 국제표준을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
고려대 강병구 교수는 “소비자의 결정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표준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며 “시장에서 소비자의 만족도 등을 토대로 만들어진 ‘사실상의 표준’을 기준으로 국가표준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웅빈 최승욱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