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69일간의 기적] 터널 무너질까 1초에 1m, 1시간에 1명씩 끌어올려

입력 2010-10-13 21:38


껴안고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다. 구조용 캡슐 불사조호가 광부들을 차례로 땅 위에 내려놓을 때마다 현장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차가운 사막의 밤공기가 단숨에 뜨거워졌다.

◇환호 속의 구조=구조 작업은 12일(현지시간) 밤 늦게 시작됐다. 69일 동안 햇볕 없이 지낸 광부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밤을 선택한 것이다.

저녁 8시부터 구조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길이 4m의 구조용 캡슐을 시험하느라 몇 차례 늦어졌다. 화면으로 이를 지켜보던 가족들의 긴장감도 커져갔다.

마침내 구조대원인 마누엘 곤살레스가 불사조호에 올라탔다. 밤 11시20분이었다. 거대한 총탄처럼 생긴 구조 캡슐은 폭 70㎝ 안팎, 깊이 700m의 터널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16분 후 캡슐은 광부들의 피신처에 다다랐다. 광부들이 캠코더로 직접 찍은 동영상을 통해 곤살레스가 광부들과 포옹하는 장면이 지상으로 중계됐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던 광부 가족과 친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환호성이 이어지더니 어느새 광부들과 구조대원들을 응원하는 구호로 바뀌었다.

“비바, 칠레! 치!치!치! 레!레!레! 칠레의 광부들!”

헬멧과 고글(시력보호용 특수안경)을 쓴 첫 번째 캡슐 탑승자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는 밝은 표정이었다. 그를 실은 캡슐은 1초에 1m씩 끌어올려졌다.

16분 후 마침내 불사조호가 땅 위로 솟구쳤다. 아발로스는 활짝 웃으며 땅에 발을 디뎠다. 13일 0시11분이었다.

구조는 1시간에 1명꼴로 이뤄졌다. 두 번째로 올라온 마리오 세불베다는 건강을 과시하려는 듯 펄쩍펄쩍 뛰었다. 구조대원들은 그가 내민 손을 확인하고는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땅 밑에서 가져온 돌멩이들을 하나씩 나눠준 것이다.

◇신중 또 신중=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구조대원과 광부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광부들이 3개월 넘게 갇혀 있는 땅 속 기온은 영상 30도가 넘는다. 사막의 차가운 밤공기는 영상 3∼4도. 기압 차이도 엄청나다. 지쳐 있는 광부들이 순간적으로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 습기와 먼지가 가득한 갱도의 공기도 건조한 사막과는 완전히 다르다.

광부들은 땅 위로 올라오기 전 다리의 혈전 방지를 위해 아스피린을 한 알씩 먹고 혈압을 유지시켜줄 압박양말을 신었다. 캡슐엔 산소를 공급할 마스크, 지상과 대화할 수 있는 통신장치가 부착됐다. 캡슐은 좁은 터널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광부의 맥박과 혈압, 체온을 측정해 땅 위의 의료진에게 계속 알려주었다.

터널이 다시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고 초당 3m까지 움직일 수 있는 캡슐을 1m씩 천천히 끌어올렸다.

구조 작업에는 칠레 해군과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지구상의 최첨단 기술이 동원됐지만 누구도 끝까지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지하 700m라는 깊이도, 69일이라는 매몰 기간도, 33명이라는 인원 수도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사상 최초,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칠레 정부는 당초 구조 작업이 빠르면 11월, 늦으면 성탄절을 전후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갱도가 한번 무너진 만큼 시간이 걸려도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구조 작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자 라우렌세 골본 광업부 장관은 세 가지 방식의 터널 작업을 동시 진행하게 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터널이 예상보다 빠르게 관통되면서 신속한 구조가 가능해졌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