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담합해도 공정위 고발 없이 처벌 못해”
입력 2010-10-13 18:36
가격담합에 가담한 업체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대상에서 제외했다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07년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검찰과 공정위 간 맞대결은 3년 만에 공정위의 승리로 끝났다.
전속고발권은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그동안 형평성 논란이 계속됐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합성수지 가격 담합에 가담한 혐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삼성토탈, 호남석유화학과 이들 업체의 임원 2명에게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기소할 수 있다”며 “호남석유 등은 고발 대상에서 제외됐으므로 이들에 대한 공소제기는 법률 규정에 위반해 무효”라고 밝혔다.
검찰이 주장한 ‘고소불가분 원칙’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233조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되는 죄는 공범 일부만 고소돼도 나머지 공범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발엔 이 같은 명시적 규정이 없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이를 유추 적용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2007년 10개 합성수지 업체가 1994년부터 11년간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 9개 업체에 과징금 1051억원을 부과하고 공소시효가 남은 SK 등 5개 업체는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호남석유와 삼성토탈은 자진신고 등을 이유로 과징금이 전액 또는 일부 면제되고 고발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에 검찰은 “공정위가 일부만 고발했다면 나머지는 공범으로 기소할 수 있다”며 이들 두 기업과 해당 임원들을 벌금 5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1·2심은 직권으로 정식 재판을 열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 김성하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공정위가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법 행위를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것을 막아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기업의 부당 공동행위는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기업이 가격담합을 해도 과징금 수준에서 끝나니까 대수롭지 않은 범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의 부당 공동행위에 대해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국제적 추세인 만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축소하고 장기적으론 폐지하는 쪽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