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압수수색… 대기업 사정 신호탄?
입력 2010-10-13 21:22
대기업 비리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 정부가 ‘공정 사회’를 국정 어젠다로 내세웠고, 검찰도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검찰의 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13일 불법 상속·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수사관 20여명을 서울 장충동 태광그룹 본사와 계열사 2곳에 수사관 20여명을 보내 재무 관련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수십 박스 분량의 자료를 압수했다. 태광그룹은 재계 순위 40위의 중견그룹이다. 석유화학·섬유 전문회사인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흥국생명, 티브로드, 한빛방송 등 5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태광그룹은 흥국증권 등 주요 계열사의 신주를 저가 발행한 뒤 이호진(48) 회장이 고의적으로 실권하고 미국 유학 중인 아들 현준(16)군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계열사 자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태광그룹의 내부 제보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서울인베스트는 “이 대표가 가족 소유 업체에 그룹 자산을 옮기고,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대거 아들에게 헐값에 넘겨 주주와 회사에 큰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룹 간판 업체인 태광산업의 자산을 다른 계열사로 몰래 이전해 4조∼5조원에 이르는 기업가치가 1조2000억원대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3∼4개 대기업에 대한 정밀 내사를 진행하며 본격적인 수사착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견기업 비리 수사로 워밍업을 한 뒤 대기업 비리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웬만한 규모의 기업에 대한 검찰의 물밑 수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다들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화그룹이 50∼60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자금 등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만큼 수사 진행상황에 따라 김승현 회장이 소환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대통령도 ‘공정 사회가 사정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특정 기업이나 대대적인 사정수사를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제보와 첩보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