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溫 시네마] 과거나 지금이나 용서와 사랑은 늘 복수를 이긴다
입력 2010-10-13 18:40
검우강호(14일 개봉)
“나는 차라리 돌다리가 되겠소. 500년 동안 비바람을 맞고, 500년 동안 햇볕만 쬐인다 한들 그대가 한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겠소.”
홍콩 최고의 검법 기술이 총동원된 무협영화의 외형을 지니는 척 하지만 영화 ‘검우강호’는 지독한 러브 스토리이자 신파 애정극이다. 사랑 이야기는 신파일수록 더 사랑스럽다. 모두들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슬쩍 눈물을 훔치게 된다. 너무 뻔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냐며 잘난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주인공 남녀가 제발 죽지 않고 다시 사랑을 이루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관객들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영화다.
일단 영화에는 매력적인 배우 두 명이 나온다. 한국의 대표적 미남스타 정우성(지앙)과 홍콩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는 양쯔충(楊紫瓊·정징), 미셀 려가 그들이다. 양쯔충은 곧 50의 나이임에도 예전 ‘예스마담’ 시절의 외모를 자랑한다. 두 사람의 러브신은 그래서,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두 사람을 캐스팅한 것은 놀랍고 모험적이었지만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잔혹한 암살단의 최고 자객이었던 정징은 자신을 사랑했던 소림사 고수의 희생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얼굴을 바꾼 채 평범한 비단 장사로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잘 생겼지만 가난한 청년 지앙이 다가선다. 정징은 자신이 다시 사랑받는 여인으로 살아가는 복을 가져도 되는지 고민하지만 지앙의 한결 같은 태도에 마음이 움직인다. 두 사람은 결국 단란한 가정을 꾸민다.
하지만 과거의 악연은 두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정징은 손에 넣기만 하면 무림 최고의 고수가 된다는 라마의 유해를 갖고 사라진 상태다. 암살단은 그녀의 종적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찾아내고야 만다. 암살단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정징은 큰 내상을 입게 되고 목숨을 잃을 찰나 남편 지앙이 그들을 막아 낸다. 그리고 곧 지앙의 커다란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이 영화가 갖는 신파 분위기는 마지막 장면쯤에 최고조를 나타낸다. 지앙은 그간 사랑했던 아내 정징의 목에 칼을 겨눈다. 정징은 두 뺨 가득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묻는다. “나를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묻겠어요. 그동안 나에 대한 감정은 다 거짓이었나요?” 비명을 지르듯 지앙은 대답한다. “모두 다 거짓이었어. 모두 다!” 하지만 이미 지앙의 두 눈 역시 눈물로 가득 차있다. 입으로는 거짓이라고 얘기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가 안다.
이 작품은 빼어난 무술 액션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당대 최고 액션감독의 한 명으로 불리는 우위썬(吳宇森)은 수 차오핑 감독과 공동으로 이번 영화를 연출해 냈다. 이 둘이 만들어 낸 무술 연출의 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만큼 화려하고 긴장감 넘치며 살 떨리는 느낌의 무술액션을 감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물론 이야기 구조는 우위썬의 영화가 상당 부분 그렇듯이 다소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대수가 아니라고 느낄 만큼 영화는 빠르게 관객들을 흡입시킨다.
무엇보다 지향하는 테마가 그럴 듯하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복수극의 얼개를 갖고 있지만 복수의 복수가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끊어 내려고 한다. 용서와 사랑은 늘 복수를 이긴다. 오랜 과거나 지금이나 그 같은 명제가 늘 진리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됐다. 14일 개봉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