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미소 전도사’ 정연아씨의 암 투병 고백] 혈액암 4기라는 그녀… 활짝 웃고 있었다
입력 2010-10-13 18:20
그는 일중독 환자였다. 40대까지는 성공지상주의자로 살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한 여성이라고 했다. 11년 전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는 책을 내면서 스타 강사가 됐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쏟아지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 등 늘 스케줄이 빡빡했다. 이미지컨설턴트로, 세미나 강사로, 칼럼니스트, 저술가로 정신없이 살았다. 그의 반평생은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한 기간이었다.
과거엔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예수를 바로 믿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2008년 하나님과의 만남은 세상의 어떤 성공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인생 대역전 드라마’였다.
그는 원래 천주교 신자였다. 26세에 결혼해 ‘장군 집 며느리’가 되면서 묵주조차 멀리했지만 마음속엔 늘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었다. 2년 전 친한 친구의 오래된 기도 덕분으로 기독교로 개종했을 때만해도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성공한 여성으로 통했다. 그해에 펴낸 ‘행복한 크리스천에겐 표정이 있다’는 ‘마음이 행복하면 표정도 행복하다’는 메시지로 아직도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자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700가지 고통에 시달려도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결코 아름답지 않은 ‘행복 전도사’의 극단의 선택 앞에서 그녀도 흔들렸다. 그녀에겐 그동안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큰 고민이 있었다. 암이었다.
“혈액암입니다. 림프암 4기라더군요. 사람들은 그냥 ‘말기’라고 하죠.”
잘못 들은 이야긴 줄 알았다.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이며 사단법인 이미지컨설턴트협회 이사장 정연아(53)씨가 암에 걸렸다? 그렇게 시원시원하고 건강한 분이. 벌써 8개월이나 됐단다.
거절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뷰는 언제라도 좋단다. 통통 튀는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교동 희성교회(방충근 목사)에서 정씨를 만났다.
연두와 오렌지색이 섞인 노랑 목티에 감색 상의, 베이지 바지를 입었다. 교회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분명 정씨였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달라보였다. 갸름한 얼굴, 늘 생머리를 넘기고 묶고 다니던 모습이 아니었다.
“제 머리 스타일 괜찮아요? 쉰셋의 나이에 원수보다 더 미운 놈(암)을 만났지 뭐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뭐 어떡하겠어요. 안 된다고 쫓아낼 수도 없어서 그냥 친구처럼 같이 살죠. 하하하….”
얼굴이 달덩이처럼 바뀐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남의 이야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찾아 든 불청객을 소개했다.
“올해 설 연휴 전에 오른쪽 다리에 뭔가 불쾌한 덩어리가 있는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염증이겠거니 했죠. 의사 선생님이 조직을 떼고 하는 말이 색깔이 곱다고 해서 픽 웃고 말았는데, 4기라는 거예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이 놈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와도 한참 잘못 찾아온 거구나 생각했죠.”
평소에 자동차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린데 그날은 스무 시간도 더 걸리는 것 같았단다. 일단 가깝게 예정된 강의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가장 급한 일이었다. “저, 제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됐어요. 담에 꼭 보강해드릴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는 마이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 돌아오니 딸이 ‘엄마, 엄마’ 하고 우는 거예요. 그런 딸에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어요. 걱정마라고 했죠. 하나님이 치료해주실 거니까. 그리고 내려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늦은 점심을 먹었더니 시어머니와 남편, 딸이 하도 기가 막히기라도 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거 있죠.”
첫날은 그렇게 얼떨결에 지나갔다고 했다. 이튿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었다.
“네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그래서 내 안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막무가내로 쫓아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니까 평소에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고 했다. 그동안 건국대 인근에 있는 교회에 나가느라 집 앞에 교회가 있긴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붉은 옷을 입고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것이었다. 희성교회 십자가였다. 시집와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십자가인 줄을 예전엔 몰랐었다고 했다.
그날부터 정씨는 희성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이렇게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대로 지금 죽을지언정 웃음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안 되면 입가에 고리를 달아 양쪽 귀에 걸고 살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 오후 6시까지는 홍대 앞에 있는 마포평생학습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해가 지면 북카페로 간다. 이미 반 권은 썼단다. 가제목은 ‘매력지상주의자’로 정했다.
“사실, 저라고 왜 스트레스가 없었겠어요. 띄어쓰기 하나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말로는 ‘행복’을 외치면서도 제 눈가엔 끝없는 욕망과, 분노가 끓고 있었어요. 림프암이라는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그냥 기도만 하면 나을 줄 알았다. 2개월 동안 억지 미소를 짓고, 그냥 부르짖었다. 큰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과 싸워야 했다. 부정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2초 정도 맥박이 멈출 때마다 숨이 막혀 미칠 지경이었다.
“저 사람은 왜 암에 안 걸리고 잘살까? 저 여자는 어쩜 저렇게 머리숱이 많담? 참 복도 많은 사람이다.”
정씨는 지금까지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같은 질문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3주 간격으로 5개월 동안 6차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한 번 병원에 가면 5시간 정도 링거를 맞았다. 구토 억제, 항암, 표적주사제 등 3가지를 다 받아들이고 나면 두 번 다시 병원에 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고 했다.
“암 걸린 사람들이 왜 죽는 줄 아세요. 못 먹어서 그래요. 일단 음식 냄새가 싫고 먹어도 곧바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못 먹는 거예요. 하지만 전 막 먹었어요. 남들은 나무 꼬챙이처럼 마르는데 저는 되레 6㎏이나 쪘어요. 사실은 부은 거지요.”
손가락을 얼음 통에 넣은 것처럼 아리고 쑤셨다. 팔과 다리는 저렸다. 화상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페트병 마개도 딸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700가지 고통이란 말이 정말 이해가 가요. 전등 스위치 누르는 것도 아파서 싫을 정도였다니까요. 근육통에 헉헉 숨이 차고, 고통이 몰려오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하도 위가 아파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항암제 부작용으로 심부전증에 식도염까지 생겼다지 뭐예요.”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정씨는 지난 5일 뜻밖의 검사 결과 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주치의에게 두 번 정도 더 맞게 해달라고 매달렸다고 했다. “의학상 치료할 것은 다 끝났어요. 일단은 암 세포가 거의 사라졌어요. 3개월 후에나 봅시다.”
정씨는 2010년 가을,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암이라는 나쁜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이 밝은 표정을 되찾고 진정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살다가 웃으면서 죽자’는 것이 제 새로운 사명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밤이면 마약 등 환각의 바다로 변하는 홍대 문화를 바로 잡는 데 희성교회 방 목사님과 함께 헌신하겠다는 사명입니다.”
글 윤중식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