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 대학원생 을지 자르갈씨 “한국서 받은 사랑 몽골 다음세대에 전해야죠”

입력 2010-10-13 17:55


“우리 을지 사진 예쁘게 찍어주세요. 오늘 너무 예쁘다.”

을지 자르갈(31·여·장신대 구약학 석사과정)씨는 행복해 보였다. 12일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학 교정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친구들은 을지씨를 보며 엄지를 올렸다.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웃음을 띤 채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췄다.

나의 가족 한국

그에게 한국은 ‘가족’이다. 한국인 친구들은 형제요, 또 자매다. 지난 5월 을지씨는 갖고 싶던 아이폰을 손에 넣었다. 친구가 “휴대전화 너무 오래 썼지?”라며 불쑥 아이폰을 선물로 준 것. 친구는 을지씨의 휴대전화 요금을 묵묵히 내면서 군말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에겐 가족과도 같은 한국인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을지씨는 1998년 몽골 울란바토르대 한국학과 입학과 동시에 몽골인 교수의 권유로 한인교회인 아멘교회에 나갔다. 좋은 사람도 많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그는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 몽골의 기독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1∼2%로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교회에 간 첫날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 축복해줬던 것을 잊을 수 없어요.” 고향을 떠나 살던 그에게 한인교회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한국어가 늘지 않아 고민을 거듭하던 2000년엔 이 교회 안광표 목사의 부탁으로 새벽예배의 통역을 맡았다. 매일 한글성경 1장과 몽골어 성경 1장을 읽고 쓰며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 실력이 크게 향상돼 고민이 해결됐다. 신앙도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국제적으로 활동할 꿈을 갖고 있던 그가 신학을 선택한 것은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통역을 한 6년 동안 매일 아침 기도하며 ‘먼저 믿은 사람으로서 몽골인을 변화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안 목사 역시 용기를 북돋웠다. 안 목사는 몽골 사역의 수족과 다름없었던 을지씨를 한국으로 보내 신학을 할 수 있게 도왔다. “제 도움이 꼭 필요한 분인데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며 한국으로 보내주셨어요”라고 기억했다. 순간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내 진심어린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받은 것 이상 돌려줄래요”

을지씨는 외투를 벗어 오른팔을 보여줬다. 심한 화상 자국이 팔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는 “한 살 때 끓는 물에 팔을 넣었다 화상을 입었어요”라며 상처 부위를 어루만졌다. 7년 전 허벅지 피부를 이식해 좀 나아진 거라고 했다.

피부 이식 역시 한국인 덕분이었다. 2003년 그는 서울 안국동 안동교회의 도움으로 세 차례에 걸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안동교회와 수술을 집도했던 백병원 백낙환 박사의 지원 덕에 그는 금전적 어려움 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한국 사람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참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받은 것 이상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게 어느새 그의 꿈이 됐다. 그는 올해 초부터 안동교회 영아부 전도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는 “주일 모든 예배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 가장 마음이 허전해요. 명절 이후의 적적함과 같은 감정이죠”라며 아쉬워했다.

다음 달부터는 몽골 선교를 꿈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몽골어를 가르칠 예정이다. 을지씨는 “제가 받은 모든 것을 꼭 한국, 또 몽골의 다음세대에 전해주고 싶어요. 어려움이 많겠지만 기쁘게 제 소임을 다할 겁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