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 아이들, 절망 상대 한판승… 사북감리교회, 유도로 지역문화를 바꾸다

입력 2010-10-13 17:52


“다음은 두 명씩 시합이다. 나래하고 다빈이하고 붙어.”

두 사람은 옷깃을 먼저 잡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정다빈(정선 사북중 3년)이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신나래(사북중 2년)가 이를 피하면서 반격을 했다. 둘은 엎치락뒤치락 하다 매트에 쓰러졌다. 체격이 좋은 다빈이가 나래의 목을 잡았다. 이어 조르기 기술에 돌입했다. 이때 “뽕∼”.

다빈이가 나래의 목을 풀면서 말했다. “어휴 방귀냄새, 목사님 기권할래요.” 시합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너나없이 배꼽을 잡았다. 몇몇은 매트 위에 나뒹굴며 웃었다.

지난 9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감리교회 4층. 아이들이 유도하며 땀을 흘리고 웃는 이곳은 체육시설이 아니라 교회다. 정확히 말하면 교회에 마련된 체육관이다. 이 교회 김대경 목사가 교회 건물 4층에 체육관을 만들고 유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 팀은 2005년 교회 자격으로 강원도 회장기배 유도대회에도 나갔다.

교회는 이어 사북의 초중고에 유도부를 만들었다. 또 지역 내 리조트 강원랜드를 설득해 실업팀 ‘하이원’을 조직하도록 도왔다. 베이징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정경미가 하이원 소속이다. 지금 사북은 유도 특성화지역으로 변모했다. 한 교회가 지역의 체육문화를 바꾼 것이다.

교회가 유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 목사가 부임한 2004년부터다. 김 목사는 유도 3단으로 중학교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고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유도였다.

하지만 육사 대신 신학교에 입학했다. 고2때 색약 판정을 받으면서 육사 입학자격을 잃었다. 크게 실망한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갔다. 그곳에서 성령 체험을 하고 목회자 길로 들어섰다. 유도는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하지만 유도의 묘한 매력을 잊지 못했다. 그는 하남시 성안교회 부목사로 일하면서 담임목사 몰래 유도장을 다녔다. 사북교회 사정은 부흥회를 다녀온 담임 목사로부터 들었다. 정선 카지노가 지역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말이 기도 제목으로 남았던 것. 또 감신대 휴학 중 사북탄좌 550m 지하 갱도에서 탄을 캤던지라 정선의 암울한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김 목사는 좋은 조건의 청빙을 마다하고 사북교회로 부임했다.

사북지역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사북에서 가장 많은 업종은 모텔 전당포 다방이다. 모두 리조트 내 카지노와 연결돼 영업 중이다. 카지노가 문을 닫는 아침 6시에는 이곳에서 나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밤샘 도박으로 돈을 잃은 이들이다. 초중고 학생들은 등교시간에 매일 이들과 마주한다. 또 많은 학생들이 전당포의 해결사 노릇을 하거나 다방 ‘삐끼’ 등으로 일했다. 김 목사는 “카지노가 폐광촌인 이지역에 경제적 도움이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역민의 정서에는 대단한 위협 요소”라고 말했다.

교회 상황도 안 좋았다. 4층짜리 교회 건물은 짓다 만 상태였다. 30% 공정이 남았고 빚도 1억여원 있었다. 성도는 15명에 불과했다. 예배당은 지금의 38번 국도변에 있었다. 보상을 받아 교회를 새로 지었던 것. 하지만 준비 미흡으로 도중에 예산이 바닥났다. 교인들도 자포자기 상태였다. 김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공사를 포기한 건설업자부터 수소문해야 했다.

김 목사는 지역과 교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고민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마무리가 안 된 교회의 4층 공간이었다. 매트를 깔고 유도를 하면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는 당장 실행에 옮겼다. 예배당 위에 체육관을 만든다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교인들이 반대하지 않았다.

교회는 유도를 가르쳐 준다고 전단지를 뿌렸다. 그러자 초등학생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매일 오후 5∼6시 반 유도를 가르쳤다. 반대하는 부모도 있었다. “운동은 힘들다. 운동하면 공부를 못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일일이 찾아가 설득했다.

마침 동역자를 만났다. 당시 강원랜드 유송근 상무가 돕겠다고 나섰다.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한국대표선수단 유도감독을 지냈다. 유씨는 사북교회로 교회도 옮겼다. 목사와 상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들은 아예 초등학교에 유도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사북초등학교 교장을 찾아가 유도부 창설을 설득했다. 교장도 유도에 관심이 많았다. 교장의 관심과 유씨의 재정 지원, 김 목사의 열정이 하나로 모아졌다. 유씨는 매트와 도복 비용을 모두 사비로 냈다. 또 강원랜드 직원 중 용인대 유도학과 후배들을 코치로 보냈다. 학교는 2개의 교실을 내놨다.

교인들도 합세했다. 새벽기도회 때 선수 아이들 이름을 거명하며 기도했다. 유도실력 향상뿐만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해 간구했다. 또 식사와 간식을 지원했다. 시합하는 날엔 금식 기도도 했다. 김 목사는 사모와 함께 시합장을 찾아 열일 마다하고 도왔다.

그러자 각종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05년 교회 유도부 창설 이후 첫 참가한 강원도회장기배 유도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사북초 유도부 창단 이후 더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2006년 강원도 교육감배 유도대회에서 금 4, 은 3, 동 4개를 기록했다. 교회에서 배운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이 대회에서 금 1, 은 2, 동 3개를 땄다. 2007년 생활체육 전국유도대회에서는 준우승했다. 이후에도 매년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김기헌군은 작년 전국 소년체전 도대표로 출전 했다.

사북초 유도부원들이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스카우트 경쟁까지 생겼다. 유도 선수로 전도유망한 아이들이 모두 외지로 나가게 될 것이 우려됐다. 그래서 올 3월에는 사북중·고등학교 유도부가 만들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지역을 빛낼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2008년 강원랜드 실업팀 하이원이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다. 하이원 창단은 초중고 유도부 아이들에게 실업팀에 갈 수 있다는 꿈을 줬다.

해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실력뿐 아니라 인성, 신앙도 달라졌다. 건들거리던 장현우(사북고 2)군은 이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년 동안 유도를 배우며 모범생이 된 것이다. 사북중·고 유도부의 주장 역할까지 한다. 김 목사는 “한마디 하면 열 마디 하던 현우”라며 “이 아이가 교회에 나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웃었다.

정다빈은 남에게 끌려다니는 성격이었다. 매사에 아이들에게 좌지우지됐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한 이후 자신감을 얻었다. 올 초 강원도 소년체전과 교육감배에서 각각 금과 동을 땄다.

신학교 진학을 준비 중인 김태현(사북고 2)군은 “열심히 해서 국내 첫 유도선교사가 되겠다”며 “태국이나 미얀마 등을 겨냥해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하이원 입단을 꿈꾸는 아이들도 있다. 신나래(사북중 2)의 목표가 하이원에 들어가 실업선수로 유도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3J’를 강조한다. “3J는 JESUS, JUDO, JOB이에요. 예수 유도 학업. 이 모두에 목숨을 걸자고 하죠. 예수, 유도에는 최선을 다하는 데 학업은…글쎄 모르겠네요.” 그러자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교회도 서서히 부흥했다. 아이들을 따라 교회에 출석한 부모들이 여럿이다. 신앙이 없는 유도부원 부모도 교회 일에 호의적이 됐다.

사북교회는 이제 유도를 통한 세계 선교를 꿈꾼다. 이 꿈도 이미 첫발을 내디뎠다. 교회는 2006년 태국 치앙라이 덴마오교회에 이어 2009년 미얀마 타질렉 지역에 교회를 봉헌했다. 앞으로 이 교회를 정기적으로 방문, 유도시범을 보인다는 계획이다.

김 목사는 “교회가 지역 문화를 선도하고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꿈을 주어 자신감을 얻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도를 통한 스포츠의 선교 가능성을 봤다”면서 “암담했던 목회에 새로운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선=글 전병선 기자·사진 신웅수 대학생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