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 D-28] 국격 높이고 인맥 넓히고…한국 ‘소프트 파워’ 커진다
입력 2010-10-13 18:08
④ 정치 외교적 효과
최희남(50)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의제총괄국장은 국제 경제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이 확대된 것을 현장에서 실감한다고 했다. 서울 G20 정상회의 의제를 담당하는 그는 미국과 유럽의 국제통화기금(IMF) 의결권 갈등,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 등 글로벌 난제의 한복판에 있다. 개도국의 이익을 반영해 선진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중책도 맡았다.
그러나 G7(서방선진 7개국) 시절에는 전혀 다른 고민을 했다. 그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과 국제금융과장을 거친 국제금융 전문 관료다. G7 회의가 열리면 주로 아시아 대표인 일본의 어깨너머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고 그 배경 파악에 주력했다. 배경을 알아야 제대로 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 국장은 14일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G7에 관한 정보를 주면서 좀 생색을 내기도 했다”며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소득은 ‘노하우’=최 국장 등에 따르면 G20 의장국이 된 뒤 우리나라는 각종 1급 정보와 고급 자료를 자유롭게 접하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수준 높은 자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G20 멤버는 물론 테두리 밖 국가들도 우리나라와 정보를 교환하고, 의제를 협의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 한국은 내년까지 G20 체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G20 정상회의는 전·현·후임 협조체제(트로이카 체제)이기 때문에 전임 의장국은 경험을 살려 현임 의장국에 조언을 하게 된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회의에서 한국의 G20 정상회의 개최가 확정된 이후 내년 프랑스 회의까지 2년이 넘는 기간에 우리나라가 국제 경제외교를 리드하는 셈이다. 이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그 경험은 고스란히 남는다.
◇소프트 파워 증대=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 내놓은 ‘서울 G20 정상회의와 기대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책·외교 분야 국가브랜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인 24위다. 원만한 국제관계, 정치사회적 안정, 국제사회 기여 수준 등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정책·외교 분야 지수는 OECD 평균을 100으로 환산할 경우 대한민국은 7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 121, 경제·기업 107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수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G20 정상회의를 성공리에 마무리할 경우 국가브랜드 향상을 통해 우리나라는 ‘소프트 파워’가 증대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소프트 파워란 강제력이나 경제적 보상 대신 매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능력이다. 특히 ‘정책·외교’ 분야에서 진일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서는 G20 정상회의를 통해 신흥국 대표주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한국의 정치·사회 안정성이 재평가되며, 국가 간 합의 도출을 이끌면서 외교적 리더십을 공고화해 결과적으로 소프트 파워를 제고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일각의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G20 정상회의 개최가 당연시되고 이미 많이 치렀던 선진국들에서 열리는 것과 달리 개도국에서 처음 치러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강조했다.
◇국제 네트워크의 확장=최원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는 점이 최대 이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과장급 실무자에서 교섭대표(세르파), 장관급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접촉을 밀도 있게 진행했다.
G20에 참여하지 못하는 170여개 국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저소득국에 대한) 개발 의제’ ‘글로벌 금융안전망’ 등은 모두 개도국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제인 만큼 외교의 외연이 대폭 넓어질 수 있는 기회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G20 개최 확정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참여하는 회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지고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IMF 쿼터 높일 수 있을까=가시적 성과로는 IMF 지분 상승을 통한 영향력 확대가 있다. IMF 지분과 국제 금융계에서의 입김은 정비례한다. 미국은 유럽의 IMF 이사국 수를 줄이고 지분도 떼어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에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럽은 미국의 거부권 포기를 조건으로 내걸며 대립 중이다.
이런 틈새에서 지분 상승을 꾀하는 우리나라는 IMF 지분을 1.345% 보유하고 있다. 2008년 쿼터 조정으로 한국의 지분은 1.412%로 높아지게 됐지만, 회원국들의 비준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
명분은 충분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개도국의 대변자로서 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이를 토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잘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반발이 거세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