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어느 고인의 블로그
입력 2010-10-13 17:58
그는 지난 7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치료법이 전혀 없다는 간질성 폐렴이 원인이었다. 아소 토시후미(阿蘇敏文) 목사, 그는 1940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일본이 패전을 맞을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며 한국을 태어난 고향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 체험 때문인지 그는 유달리 반전의식이 강했고 평생을 반(反)천황·반군국주의·전쟁책임고백·평화·인권운동에 힘썼다. 30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결같았다. 몇 년 전 재미 일본인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 ‘요코이야기’에 대한 비판이 번질 때 본보에 기고한 칼럼이 그 한 예다.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다면서 엉뚱하게 한국인을 학살자, 강간범으로 왜곡하는 ‘요코이야기’가 나도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말로 일본의 나아갈 바를 상징하고 있지만 ‘요코이야기’는 ‘추한 나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2006년 1월 26일자 ‘요코이야기의 진실’)
지난 6월부터 그의 블로그(http://red.ap.teacup.com/applet/reverendaso/archive)에는 유난히 청진 시절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패전 직후 가족과 함께 청진의 일본인 수용소를 탈출한 얘기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때 어떤 할머니가 건네준 주먹밥 얘기며…. 그는 자신의 때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즈음부터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는 것은 일과가 됐다. 쉽게 병문안을 갈 수도 없으니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그를 부르고 애태워하며 좀더 이 땅에 그를 붙들어주십사고 매일매일 그렇게 의식을 치렀다. 그러던 가운데 7월 6일, 블로그엔 한동안 뜸하던 그의 말이 올라왔다. “종말의료 준비완료.”
이후 블로그는 더 이상 갱신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의 부음을 들었다.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그의 주장대로 가족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죽었을 때 당사자의 계정 처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죽은 이가 온라인상에서는 계속 살아있는 것에 대한 찬반인 것이다. 고인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야 인지상정이거늘 논란이 된다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오늘도 아소 목사의 블로그에 들렀다. 10월 11일자로 갱신된 것이 있다. “아소 토시후미는 70세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의 부인 미치코씨 글이다. 11일은 그의 70번째 생일이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