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윤호] 칠레 광부들의 ‘아름다운 양보’

입력 2010-10-12 17:37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해 바다에 가라앉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배의 악단 단원 8명은 구명조끼 대신 악기를 집어 든다. 이들은 승객들이 서로 먼저 구명보트에 오르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무려 3시간 동안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연주를 한다.

1998년 개봉된 영화 ‘타이타닉’에서 극적으로 표현된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여주인공(케이트 윈슬렛 분)과 같은 1등실 승객들은 대부분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남주인공(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처럼 3등 선실에 있던 승객들은 통로가 봉쇄되는 바람에 탈출을 못했다. 상류층 승객들은 선원을 매수하거나 위협해 부녀자와 어린이에게 먼저 돌아가야 할 구명보트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상류층의 위선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최후 순간까지 악단을 지휘한 바이올리니스트 월러스 하틀리의 시신은 몸에 바이올린이 묶여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하틀리를 비롯한 단원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는 기념물이 영국 호주 등 13곳에 세워져 있다. 하틀리는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발간하는 ‘영국인명사전’에 지난 5월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다.

지난 8월 5일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 사고로 매몰돼 두 달 이상 700m 지하에 갇혀 있는 33명의 광부들이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이들은 구출용 갱도가 완성돼 1인승 캡슐을 투입하기 전에 구조 순서를 정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자 서로 끝까지 남겠다며 다른 동료를 먼저 구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을 구조하는 데 90분가량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이틀을 더 지하에서 버텨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맑은 공기를 마시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을 텐데 극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동료애를 보인 것이다.

광부들은 지하에 기도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매일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삼일 삼야’를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며 부르짖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요나의 기적을 간구했을까. 이들은 지하에 투입된 소형 카메라를 통해 칠레 국가를 합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족들에게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연일 훈훈한 휴먼 스토리를 전해온 이들이 오늘 정오(현지시간 12일 밤 12시)부터 한 사람씩 땅 위로 나온다. 이들의 귀환을 환영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들 이야기가 ‘33인(The 33)’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다니 ‘타이타닉’만큼 감동적인 작품을 기대한다.

김윤호 논설위원 kimy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