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고육지책, 비서실장 황장엽 빈소 대리 조문

입력 2010-10-12 21:59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대리인으로 양승조 비서실장이 12일 오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오후에는 박지원 원내대표 등 원내대표단이 황씨 빈소를 찾았다.

손 대표의 대리 조문 결정은 고육책 성격이 짙다. 조문에 전면 불참하면 여론의 역풍이 불 수 있고, 당 대표가 공식적으로 조문에 나설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대표와 원내대표가 역할을 분담하는 식으로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일각에선 복잡한 당내 기류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민주당 내부에선 황씨가 분단체제의 희생자인 만큼 조문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의견과 향후 대북 관계에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갈렸다. 따라서 햇볕정책을 비판했던 황씨 조문에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는 모양새로 당의 대북기조를 유지하고, 동시에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번 결정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과 당직 인선 등에서 보여준 손 대표의 지나친 신중함에 대한 반발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의원은 “현안에 분명한 노선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음에 따라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며 “한나라당 출신으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야당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는 부족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대리 조문 역시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의 압박에 떼밀려 결정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오전 국정감사점검회의에서 “민주당 자체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국민적 추모의 열기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제1야당으로서 적절한 처신을 해주기를 바란다”며 “최근에 민주당이 쌀 지원 문제와 황장엽 비서의 별세를 연결시키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문 문제와 맞물려 진보정당 간 북한 논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 “북한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이며 중요한 현상에 발언하는 것은 진보정치세력을 포함해 모든 정치세력의 기본적 의무”라며 “오히려 중요한 문제에 발언하지 않는 것은 다른 어떤 논리로 설명해도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일 “남북관계가 평화·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라면서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민주노동당과 나의 선택”이라고 밝힌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반박한 것이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