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관용없다”… 신한 지배구조 갈수록 미궁

입력 2010-10-11 21:29


담담한 표정이었다. 간간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11일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한 ‘신한사태’ 이후 첫 외부 노출이었다.

라 회장은 출근길에 5분 동안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기 사퇴할 뜻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라 회장, 신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한꺼번에 물러나는 동반 퇴진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차명계좌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 위원장은 다음 달 금융감독원의 신한금융지주 종합검사가 끝난 뒤 책임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했다. 책임질 사람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론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한금융의 지배구조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라의 선택’은 시간 벌기=지난 8일 금감원의 중징계 방침 통보를 받고 미국에서 급히 귀국한 라 회장은 주말 동안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라 회장의 선택은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시간 벌기로 요약된다. 조기 퇴진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후계구도를 만들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일단 계획대로 내년 3월까지 회장직을 유지하려면 다음 달 4일 열리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문책경고 수준의 징계가 확정돼야 한다. 직무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곧바로 퇴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신한금융은 오는 18일 소명 기간까지 최대한 소명을 해 제재 수위를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라 회장이 이례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다. 라 회장은 ‘조직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문구를 수차례 강조했다.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간접적으로 금융당국에 ‘시간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금융위와 금감원 국감 일정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국감에서 실명제법 위반에 대한 각종 의혹과 질타가 쏟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라 회장은 차명계좌 개설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실명제법은 위반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금융당국 ‘고강도 문책’ 예고=금융당국은 모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 사장은 물론 실명제법 위반으로 제재가 예고된 라 회장, 내부 통제 절차를 어긴 이 행장까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당장 다음 달 4일 열리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첫 고비다. 금감원이 직무정지 상당의 제재를 결정하고, 금융위가 확정하면 라 회장은 리더십이 훼손되기 때문에 자진해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이 행장 주도로 사태 수습이 이뤄지거나 회장·사장 대행체제가 구성될 수 있지만 이 행장 거취도 불투명하다. 검찰이 신한사태와 관련한 각종 고소·고발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는 데다 금감원은 다음 달에 강도 높은 종합검사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라 회장, 신 사장, 이 행장으로 이어지는 ‘빅3’가 동반 퇴진하거나 순차적으로 퇴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제3의 인물이 경영권을 넘겨받아 사태 수습에 들어간다는 시나리오다. ‘포스트 라응찬’으로는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류시열 신한금융 비상근이사,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과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