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참 한심한 우리나라 여성들

입력 2010-10-11 17:39


“차라리 여성을 임명하자.”

최근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이 병역기피 의혹으로 줄줄이 낙마하자 이런 말들이 나왔다. 여성은 최소한 병역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꼭 대안일 수야 없겠지만 청와대 벙커회의에 군 미필자들이 즐비하게 앉아있는 볼썽사나운 풍경보다는 나을 듯도 싶다.

여성은 남성보다 부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여성의 옷에는 안주머니가 없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청탁과 뇌물 등 부패가 주로 저녁 술자리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음주문화와 거리가 있는 여성이 부정부패에 빠질 위험은 분명 작아 보인다.

사실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은 여성들이 다 해주고 있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17세 이하 여자축구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은 것만 해도 그렇고 양궁, 골프, 역도 등 스포츠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 등 다른 분야에서도 국제적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인사 중에는 여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비주류

하지만 남성 위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다. 지위가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비례대표 여성공천할당제 실시 등에 힘입어 16대 5.9%에서 17대 13.0%, 18대 13.7% 등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장관은 참여정부 때 4명까지 늘어났다가 지금은 2명으로 줄었다. 통상 여성으로 채워지는 여성부장관을 빼면 단 한 명인 셈이다.

민간기업의 푸대접은 더 심각하다. 최근 여성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사회 여성임원 비율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81개 기업 중 여성 임원이 있는 곳은 14%에 불과하고, 그나마 이들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도 1.5%에 그쳤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한국의 양성평등지수는 2009년 기준 조사 대상 134개국 가운데 115위에 머물렀다.

반면 북유럽 국가의 여성의원 비율은 40∼50%에 이른다. 요즘 교육 강국으로 주목받는 핀란드는 장관의 60%가 여성이다. 의원 대부분을 비례대표로 선발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은 순위를 정할 때 남성과 여성을 교대로 배정한다. 상장기업에 대해 40%의 여성임원 할당제를 시행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기업들이 반발했지만 오히려 부패가 줄고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이 같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다. 당사자인 여성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다. 즉 여성들이 ‘자매애’로 똘똘 뭉쳐 쟁취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한심하다. 남성보다 결코 못나지 않았음에도 제 몫을 찾지 못하고 있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 탓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여성들 스스로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틀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여성 정치인이 적은 이유 중 하나가 여성들이 여성 후보자에게 표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 3명의 후보만 남은 케이블TV의 ‘슈퍼스타K2’에서도 최종 우승자는 결국 남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네티즌 투표참여자 가운데 여성이 훨씬 많은데, 이들이 남성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자존감 세우고 목소리 높여야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여성들의 이런 성향을 ‘들러리 근성’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KBS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가 여성들이 습관적으로 남성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행태를 풍자했지만 남성에게 기대어 사는 것을 오히려 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사과와 변명을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청문회 때마다 공직자 후보들의 부정과 부패를 보는 것은 이제 정말 신물이 난다. 여성들이 그 대안이 돼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여성들의 자세를 보면 언제쯤 그렇게 될지 캄캄하다. 제발 남성들에게 밥도 사면서 목소리 좀 높여라.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