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카바 수술 진실게임
입력 2010-10-11 17:59
개인의 성공보다 공의와 인의를 앞세우는 의사, 로이터 통신 및 EBS ‘메디컬다큐멘터리 명의’, SBS ‘명의열전-100세 건강의 지혜’와 MBC ‘성공시대’에서 집중 조명….
몇 해 전 평균 시청률 24.6%를 기록한 화제의 의학 드라마 ‘뉴하트’의 실제 모델 송명근 건국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의 프로필이다.
현재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송명근 심혈관외과 클리닉’을 열고 매일 8시간 이상 수술을 하고 있는 그가 구설에 올랐다. 벌써 2년째 안전성과 윤리성 논란을 빚고 있는 속칭 ‘카바(CARVAR, 종합적 대동맥근부 및 판막 성형술) 수술’의 진실게임을 놓고 말이 많다.
국내 최초로 동종(同種) 심장이식 수술과 인공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데 이어 판막 이상으로 생명이 위험한 심장병 환자의 판막 성형과 함께 주변의 대동맥 근부(뿌리)까지 동시에 바로잡아주는 신의료기술, 카바 수술법까지 개발해 한때 우리 시대 명의로 평가받던 송 교수가 왜 이 같은 시비에 휘말리게 됐을까.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심장학회, 한국심초음파학회, 대한고혈압학회 등 심장병 관련 의학계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한목소리로 그의 카바 수술법에 대해 두 차례나 부정적인 연구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송 교수는 급기야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자청, “대한민국의 소중한 기술인 카바 말살과 송명근 죽이기”라며 자신의 억울함을 검찰 수사를 통해 풀 수밖에 없게 됐다고 언론에 호소했다. 보건연은 이에 대해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대한심장학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의 입장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선 어느 한쪽은 자신의 목적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라 보건연 측의 말을 들으면 그들이 옳은 것 같고, 반대로 송 교수의 해명을 들으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물며 언론을 통해 양측의 공방을 단편적으로 전해 듣는 일반인과 환자들의 답답함은 오죽할까 싶다.
송 교수는 무엇보다 보건연이 사망률 등 자신의 카바 수술 유해성을 13%로 계산한 것이 명백한 오류라고 주장한다. 4% 이내로 서울대병원 등 다른 대학병원에 비해 아주 낮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조사 대상 환자를 임의로 선정, 수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든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의학계가 학술세미나나 공청회 같은 자체 정화 장치를 통해 송 교수의 카바 수술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는 절차를 충실히 밟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송 교수는 12시간을 설명하고 보여줘도 모자랄 카바 수술에 대해 ‘엉터리’ 보고서를 만들면서도 보건연 측이 자신에게 고작 10분 정도밖에 소명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송 교수에게도 바람이 없는 건 아니다. 카바 수술의 적절성 여부는 환자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건국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이미 1000여명이 이 수술을 받았다. 안전성 논란이 이는 와중에도 송 교수는 신념을 꺾지 않고 카바 수술을 계속하고 있다.
송 교수는 일단 논란이 종식될 때까지 카바 수술을 중지하고 학교 측에 카바 수술 조사위원회 구성을 자진 요청,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조사를 받는 게 좋겠다.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아예 지난 2007년 과학기술부가 공표한 ‘연구 윤리 진실성 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라 연구진실성위원회 소집을 관계 당국에 의뢰하는 방법도 있다. 이 같은 조사는 보건연이 관련 학회와 공모해 실제 허위 보고서를 만들었는지 뿐 아니라 송 교수 자신이 만든 고가 재료를 자신의 환자에게 남용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씻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20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그동안 공의와 인의를 강조해 온 송 교수가 이번 논란을 딛고 도덕적으로도 한 점 흠결이 없는 ‘큰 의사’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란다.
이기수 의학 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