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경자] 아무리 자유라도 이건 곤란하지요
입력 2010-10-11 17:58
“외로움과 불행 이용해 돈 버는 사업이 번창한다는 건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
오늘 아침에도 이런 메일을 받았다. ‘내가 쓰던 브라자 만져보실 분….’ 어쩌다 제때 메일 확인을 못할 땐 한꺼번에 수십 통의 메일을 검색하게 된다. 대충 보아도 제목이 ‘음란으로의 유혹’이거나 고액 이자를 감춘 대출업체 메일이다. 나는 이런 두 가지의 경우에 마음이 쏠리지 않아서 메일을 저질 쓰레기로 비웃으며 지운다. 하지만 음란성 메일 중엔 헷갈리게 하는 것이 아주 많다. 점점 더한다. 물론 그쪽에서 보자면 그런 제목을 만들어 내는 게 고수일 것이다. 대개 남자를 겨냥한 메일이긴 하다. 오빠, 자기야, 아저씨, 나 젖었어, 오빠 외로우면 연락해요, 여고생과 즐기다가 곧 퍽도 가능, 흥분제 보내드립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연락해, 정품 비아그라 등등을 보면.
하지만 더러 이런 것도 있다. ‘누나, 요즘 어떻게 지내? 외로울까 봐.’ 내가 잘 아는 소설가나 시인의 이름으로 들어온 메일의 제목이다. ‘어젠 잘 들어갔어?’ 어제 누구랑 헤어졌던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하지만 누나, 요즘…하고 나오면 어제 헤어진 후배가 없었다는 게 창피할 지경이다. 비록 외롭지 않더라도, 외로움에 마음을 쓰게 하는 유혹만큼 간절하고 아릿한 것이 또 있으랴.
어느 날 음란 메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가 그런 유치찬란한 메일을 열겠다고 줄기차게 메일을 보낼까, 물었다. 그랬더니 직장생활을 하는 후배가 자기네 회사 남자들이 그러는데 남자라면 거의 다 열어본다더라고 했다. 나는 정말 남자를 모른다. 남자들은 왜 음란 메일을 즐기는지. 물론 모든 남자가 그러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여자와 다른 남자의 내면이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난 헛산 걸까?
그리고 사채. 고액 이자를 물어야 하는 돈을 빌렸다가 목숨까지 버리는 경우를 뉴스로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젊은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고 돈을 받지 못하자 몸의 주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게 한 뉴스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세계에서 자살자가 가장 많은 우리나라의 자살 이유 중엔 사채 이자에 쫓겨 죽음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돈이 너무 급할 때가 있다.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 한다거나, 돈을 막지 않으면 한데로 나앉거나 가게가 넘어간다거나. 그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급한 일이라는 게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 ‘급전 필요한 사람’을 상대하는 장사가 벌이가 되지 않을까.
음란은 불건강하거나 소통이 막힌 생명이 근원, 그러니까 황폐한 성(性)에너지에 대한 장사이고 사채는 불행이 극에 달해 목숨이나 의식주가 벼랑에 내몰린, 그러니 둘 다 타인의 절망적 불행을 이용하는 장사이다. 사람의 외로움과 불행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업이 번창한다는 건 그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이렇게 써놓으면 간단하다. 하지만 이렇게 단 한마디로 말해버리면 의미의 깊이가 희석되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다. 왜냐면 공동체의 정신과 생활의 파탄이기 때문이다.
지난 늦여름 고향 양양에서 5일장을 보았다. 시장 골목에는 시골에서 온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집에서 기른 것들을 이것저것 내놓고 팔았다. 윤이 자르르 흐르는 호박이 있기에 얼마냐고 묻고 샀더니 말하지 않았는데 한 개를 더 줬다. 눈이 뚱그레진 나를 두고 그 아주머니가 중얼거렸다. 이웃에선 한 개 따주기도 하는 걸, 장사라고.
하긴 그랬다. 명절이면 떡 함지가 다 비도록 이웃에 돌리는 게 일이었으니. 그리고 그만큼 받아 와서 남의 집 떡들로 함지가 가득 찼으니.
외로움과 불행이 장사가 되는 세상에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촌스러움으로 폄하된다는 특징이 있다. 아무리 ‘자유…’라고 해도, 이건 정말 곤란하고 더군다나 공정하지도 않다.
몇 년 전, 중국의 오지에 사는 가난한 여성이 홍콩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난생 처음 문명한 곳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그가 한 말 중에 새겨들을 만한 것이 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도둑이 없다, 우울증이 무엇인지 모른다, 왜 사랑하는 데 그렇게 복잡하고 이유가 많아야 하는가, 나는 부유한 당신들이 부럽지 않다고.
이경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