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물자원공사 김신종 사장 “자원 외교, 가슴 찡하게 상대방 마음 움직여야”

입력 2010-10-11 16:39


최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희토류 갈등은 희소자원이 국제관계의 지렛대로 사용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식량이나 석유처럼 자원이 무기화된 것이다. 희토류 국내 비축량은 현재 3t으로 0.2일분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6년까지 1164t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은 요즘 희토류 확보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8월 볼리비아와 리튬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신대방동 광물자원공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원 확보를 위해 상대국을 감동시킬 정도의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전에 따라 와인 잔이나 기울이는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상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리튬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대담=신종수 산업부장

-우리가 안정적인 희토류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희토류가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전 세계 부존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미국 호주 등에도 희토류가 많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97%나 되는 것은 ‘덤핑 생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방사능 물질 등이 함유된 희토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문제 등을 많이 고려한다. 인건비도 비싸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 미국도 희토류를 생산하다 폐광했는데, 포기토록 만든 게 중국이다. 중국이 워낙 인건비가 싸고 환경문제에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희토류는 없으면 안 되는 자원인 데다 중국이 워낙 싸게 판다. 희토류 17개 성분은 반도체 LED 배터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반드시 들어간다. 희토류 공급이 막히면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나라마다 자구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만일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지나치게 다른 나라를 압박하면 각국이 대책을 세울 것이다. 중동이 기름으로 장난 못 치는 것도 다른 나라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조였다 풀었다하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희토류 확보대책은.

“정부도 오래전부터 희토류 파동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진출을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중국은 외국자본이 광산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다. 중국 희토류 광산에 외국 지분은 전혀 없다. 다만 희토류 가공업체에 대해서는 한 회사가 49%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은 갖지 못한다. 현재 우리는 2개 가공회사에 지분을 갖고 있다. 중국 시안의 한 가공회사에 49%, 네이멍구의 가공회사에 광물자원공사가 29%, 포스코가 31% 갖고 있다.”

-희토류를 포함해 외국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사실 지난 번 볼리비아 리튬 확보과정에서 이상득 의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옆에서 지켜봤는데, 이 의원은 연습을 무지 많이 했다. 가기 전에도 여러 번 회의하면서 디테일하게 다 따졌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조용히 호텔에서 짐을 푼 뒤 계속 공부하더라.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말할 내용의 순서까지 정해 연습을 많이 했다. 그리고 딱 맞붙었을 때에는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좋은 얘기부터 시작해서 상대 마음이 풀어졌을 때쯤 이쪽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살짝 하는데, 나도 많이 배웠다.”

-자원외교는 일반 외교와 성격이 다른가.

“사실 공식외교는 얼마나 복잡하고 딱딱한가. 의전 같은 데 신경을 쓰느라 그런지 소득도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정부 수석대표로서 상대국 대통령도 만난 적 있지만 전부 써준 것을 읽었다. 뒤탈 없는 말, 시비 걸리지 않는 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말만 읽고 끝났다. 이제는 우아하게 포도주만 마실게 아니라 가슴 찡하게 상대방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의전에 따른 공식행사만으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나.

“이 의원의 경우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그랬다. ‘당신이 대통령 돼서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더라. 정치가 안정되니까 경제가 성장하더라. 세계 경제가 위기인데 당신은 5.5%나 성장시켰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문을 열자 모랄레스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의원은 또 볼리비아 광산에서 재미를 본 뒤 철수한 스페인 민간 광산업체에 대해 모랄레스 대통령이 서운해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 의원이 ‘여기 광물공사 사장과 같이 왔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기업이 아니라 정부 정책을 받들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전에 볼리비아에서 광산을 했던 외국기업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스페인 민간기업에 관한 얘기를 하자 이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것 봐라. 민간기업이 하니까 이익만 추구한 뒤 ‘먹튀’한거 아니냐. 그러나 우리는 돈을 벌어서 계속 볼리비아에 재투자하고, 여력이 있으면 볼리비아의 불쌍한 사람도 돕고 사회사업도 하고 싶다. 우리는 볼리비아에서 돈을 벌어가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부족한 자원만 얻어간다. 그리고 볼리비아나 우리나라나 제국주의 침탈을 받았지 않았느냐. 식민지 아니었느냐. 우리도 서럽고 배고픈 걸 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차츰 이 의원에게 말려 들어갔고 나중에 배석자에게 한국과 MOU를 맺자고 말했다. 이후 이 의원은 MOU 체결 문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35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를 두 차례 더 다녀왔다. 공항에 도착하면 해발고도가 높아 숨이 턱턱 막혔다. 이 의원이 세 번째 볼리비아를 찾아갔을 때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에서 연세 많고 지위도 높으신 분이 이렇게 찾아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저는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노인이 세 번이나 찾아오는 것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요즘 말로 감동 먹은 것이다.”

-리튬 확보를 언제부터 준비했나.

“2년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으로 오자마자 바로 리튬 확보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리튬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휴대전화나 노트북의 배터리 재료로 쓰였던 정도다. 그런 정도면 굳이 국가 차원에서 신경 쓸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삼성SDI와 LG화학이 전기자동차용 리튬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전기자동차용 리튬 수요는 휴대전화나 노트북에 쓰이는 리튬양보다 4000배나 더 많다. 나중에 리튬 확보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지난해 4월 볼리비아의 꼬로꼬로 구리광산 기공식에 갔을 때 볼리비아에 리튬이 많다는 얘길 듣고 볼리비아 정부와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와 일본이 2년 먼저 볼리비아와 협상을 시작한 상태였다.”

-우리가 볼리비아와 사전에 신뢰관계가 있었나.

“스페인이 110년간 채굴한 뒤 철수한 꼬로꼬로 구리광산은 폐광된 후 20년가량 방치돼 있었다. 그 지역 고용 문제와 공동화 현상이 심각했다. 프랑스와 일본이 다녀갔지만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한국은 몇 번 와서 검토를 한 뒤 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스페인이 좋은 광석을 다 캐내 남은 게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최소한 본전 이상 해놓을 자신이 있었다. 우리 탐사기술과 선광기술이 좋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볼리비아는 한국이 진정성을 갖고 투자결정 해준 점을 고마워했다.”

-리튬 추출 기술은 어느 수준인가.

“볼리비아 내륙 오지에 있는 우유니 소금호수에는 마그네슘 등 불순물이 많다.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 기술도 굉장히 어렵다. 또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된다. 우리는 우유니 호수에서 소금물을 떠와 1년 만에 샘플을 제출하는 데 성공했다. 볼리비아에서 한국 샘플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양해각서가 체결되자 프랑스나 일본이 긴장하고 있다. 우리가 독점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일은.

“볼리비아가 우리를 파트너로 공식 지정해야 한다. 지금은 협력을 위한 MOU만 체결한 상태다. 그 다음에 우리 기술자를 플랜트 현장에 보내 생산 활동에 들어가야 한다. 볼리비아가 소금물로 리튬을 생산하려면 7∼8년이 걸리지만 우리가 맡으면 2∼3년이면 된다. 이달에 대표단이 다시 볼리비아로 가서 양국 합동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볼리비아에서 리튬을 생산하기 전까지 필요한 물량은 어떻게 조달하나.

“볼리비아 이전에 칠레와 아르헨티나와 리튬 협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와 삼성이 칠레 아타카마 호수에서 리튬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오래 전부터 해왔고, 이르면 이달 내 결론이 날 것 같다.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호수는 이미 계약을 했는데 이 두 곳에서 나오는 리튬으로 7∼8년 동안 버틸 수 있다. 한마디로 3트랙 전략이다. 한 곳은 생산(칠레), 한 곳은 개발(아르헨), 또 하나는 조사·탐사(볼리비아)다.”

-볼리비아 리튬 확보를 계기로 광물자원공사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나.

“리튬은 원래 정부가 우리에게 숙제로 준건 아니었다. 정부의 미션은 6가지 광물(철, 구리, 니켈, 아연, 우라늄, 석탄)의 자급률 목표를 해마다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만 수행하면 공사 업무는 특별히 더 할 게 없었다. 하지만 사장으로 부임한 후 리튬과 우라늄 확보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6개 자원 자급률도 부임 전 18%에서 지난해 말 25.1%, 금년 말 27% 예정이어서 가욋일을 해도 되는 여건이었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지적이 많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성과연봉제를 간부들만 대상으로 하다가 금년부터는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받은 점수만큼 인센티브가 결정되는데,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많이 주고 적게 한 사람은 적게 주고 있다. 여기서는 열심히 안 하면 망신스러울 정도로 월급 차이가 많이 난다. 한마디로 하루도 발 뻗고 잘 수 없는 곳이다. 2년 전 부임해서 25일 만에 대대적인 인사를 했다. 간부 9명의 보직을 박탈했는데, 6명이 사표내고 나중에 3명은 열심히 일해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직원들도 계속 다그친다. 회사 설립법도 고쳤다. 기존에는 광업 진흥기술 및 자금 지원이 주업무였는데 현재 지원기능은 10%밖에 안 된다. 90%는 우리가 직접 뛴다. 코치하는 게 아니라 마운드에서 직접 공을 던지는 것이다.”

정리=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