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번역본 곳곳 ‘옥에 티’
입력 2010-10-11 17:45
한국고전번역원 실록현대화연구팀이 최근 ‘국역 조선왕조실록 수정보완 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갖고 국역 실록 일부(원고지 4만4152장 분량)를 표본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에 시작된 이 연구에 따르면, 오역(誤譯)과 심한 직역 등을 비롯한 중대오류가 5.2%, 표현상 오류 등 일반오류는 무려 17.6%에 달했다. 10월 초 현재 누적된 오류 신고만 해도 9345건이다. 인터넷 국역 조선왕조실록의 검색 건수가 한 달에 300만건을 상회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수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오역·불필요한 한자어 많아=민족문화추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최고의 연구기관이 참여한 번역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랬을까 싶은 오역이 종종 눈에 띈다. 세종 즉위년 8월 21일 일지 일부를 보자. 국역본에는 ‘중국은 본디 예의의 나라이니, (중략) 우리 나라가 가려서 보낸 사신임을 또한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중국은 본디 예의의 나라이니, (중략) 우리 나라에서 사신을 골라서 보내야 될 상황이 올 것을 또한 예상해야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옳다는 지적이다.
그밖에 학자들이 우선 꼬집는 사항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가 번역문에 과도하게 사용됐다는 점이다. 영조실록을 분석한 최성환 박사는 “‘흉한 격문에 쓰여진 어구’라고 번역하면 되는 ‘흉격(凶檄)의 조어(措語)’, ‘화살과 돌’이라는 의미의 ‘시석(矢石)’ 등 읽기 어려운 번역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북한의 번역본이 순 한글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곳곳에서 의역한 것과는 정반대”라고 말했다.
‘임금이 승시(乘矢)를 쏘아 2시는 날리고 2시로 과녁의 복판과 과녁의 변죽을 연중(連中)하자 여러 신하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것이 담을 둘러친 것 같았다’는 ‘임금이 4발을 쏘아 2발은 빗나가고 1발은 과녁의 중앙에, 1발은 과녁의 가장자리에 잇따라 맞췄다. 이때 신하들은 담을 친 듯 둘러서서 구경하였다’로 적으면 될 일이다. ‘죽었다’ 혹은 ‘사망했다’고 쓰면 될 단어는 거의 항상 ‘졸(卒)하였다’고 쓰였다. 이와 같은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현상은 실록 국역이 1960∼90년대 이루어졌고, 한문에 익숙한 한학자들이 작업에 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 관용구처럼 인용되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사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영조실록에 실린 ‘납일초주 사왕숙대(臘日椒酒 思王叔帶)’는 왕망이 한나라 평제를 독살하고, 동주 시대 애왕과 양왕이 각기 그 동생들인 사왕과 숙대에게 살해당하거나 왕위를 가로채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경종과 영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세간의 소문을 묘사한 중요한 고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설명이 없다. 실록을 읽으려면 동주시대 역사 지식 정도는 필수라는 식이다.
◇특히 영조·중종실록 오류 많아=재위기간이 긴 영조(51년)와 중종(46년)의 실록은 번역오류가 잦았다. ‘중대오류’로 분류된 문장이 영조실록에서 9.6%, 중종실록에서 7.9%로 조사됐다. 영조실록에서는 심한 직역투의 번역을 한 문장의 비율이 14%나 됐다. 이 외에도 문종(6.5%), 경종(6.1%), 세조(5.7%)실록의 중대오류율이 높았다. 용어가 통일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번역 작업에 두 기관 312명의 인력이 참여했고, 사전에 표준번역안이나 기사분류 방법 등이 통일되지 않은 채 번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술용어나 전문용어, 당시 정치적 어법의 번역 등에서 연구자마다 달리 번역한 데서 생긴 문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내년부터 2016년까지 48억여원을 투입해 ‘실록 번역 현대화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오역을 고치고 고어투의 문장을 현대어로 이해하기 쉽게 바꾼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서울대 오수창 교수는 “현실적으로 번역 인력이 부족하니 명백한 번역 오류 수정과 주석 보강 등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