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그가 꿈꾼 나라는?… 현대한국학연구소 자료집 발간
입력 2010-10-11 17:41
“1948년은 조선 국민의 역사 중 괄목할 만한 기간이 되겠습니다. 이 다음 열두 달 동안에 조선 국민에 대하여 좋든지 싫든지 이 국민의 장래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또 이 결정은 조선 국민 자신이 만들 것입니다. 조선 사람으로서 이 같은 성질의 결정을 할 권세가 있는가 하는 이상한 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에게는 이 같은 권력을 주어본 일이 전에는 없었습니다.”(405쪽, 1947년 크리스마스 방송 연설)
송재 서재필 박사(1864∼1951)의 걸러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 ‘서재필이 꿈꾼 나라’(푸른 역사)가 나왔다.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자료총서의 하나로 간행한 것이다.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온 인물 서재필. 젊었을 때는 급진 개혁파로 활동하다 처형당할 위기를 간신히 넘겼고, 21세기에는 ‘대한민국 보수의 사상적 뿌리’라고 불렸다. 독립운동가이면서 미국인이었고, 이상론자이면서 현실주의자였다. ‘민족의 선각자’라는 찬사와 ‘국제정세를 오판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후세의 시선은 그 시대에 함께 명멸했던 수많은 영욕의 이름들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복잡하다.
연보와 이력만 따라가면 결코 알 수 없을 한 인물의 발자취가, 그의 글과 말을 통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구한말·일점강점기 시절 논설이나 독립신문 창간사 등 이미 잘 알려진 글은 물론 해방 이후 연설이나 대담 등도 원문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실려 있다.
안창호 선생 별세 때는 “전 조선 사람들이 애국자로 또는 지도자로 경애하고 숭배하던 안창호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썼고, 정부수립을 앞두고는 잡지에 실린 ‘풍운기’란 제목의 논설에는 “오직 바라기는 내 혈족이 40여년의 쓴 경험으로 협동·봉사의 좋은 공과를 배워서 이 해방의 좋은 기회에 속히 완전한 자립자치의 생활을 할 수 있기만 바랬었다”고 적었다.
지나친 반공으로 기울던 이승만과 그가 불화했던 1948년 신민일보 사장 신영철과의 면담 내용도 흥미롭다. “이 박사가 조선에 와서 공산주의자는 소련으로 가라고 하며 노골적인 반소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조선에 있어서의 미소관계는 험악하여지고 하지 중장(당시 군정사령관)의 입장은 대단히 곤란하여진 것입니다.”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로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파괴주의자이니 파괴주의자가 어찌 애국애족하며 건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는 평화를 희구하고 있고 평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지옥인데 자기에게는 비누 한 장 변변히 만들 능력도 없으면서 남에게 전쟁을 권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356쪽)
100년, 혹은 5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도 근엄한 사대부로 평생을 살았을 서재필은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에 한평생을 바쳤고, 뜻하지 않게 타국에서 운명했다. 그의 드러난 족적보다도 그의 인간적 실재에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문장 변화 역시 그의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구한말 정제되지 않은 표기법으로 쓴 한글 원문을 그대로 실은 거야 이해한다고 해도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글들을 한글 병기 없이 그대로 실은 것은 아쉽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