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72)
입력 2010-10-11 16:08
가을은 답니다(甘)
어느 식물의 열매든지 가을의 그것들은 단물을 품고 있습니다. 만물이 달콤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가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압니다. 자신이 달콤해지는 것은 이제 가지를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남남처럼 뿌리에서, 그 가지에서 죽음의 저편 세계 같은 낯선 땅으로 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환희인 동시에 비탄이기도 합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은 씨를 버리고 열매의 단맛만을 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당신은 버림받아 아파하는 그 씨를 남몰래 땅에 묻고 있군요.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지워 버리며, 애써 가꾼 열매가 땅에 떨어져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달콤한 과육만을 환영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당신은 버려지는 씨 속에서 싱싱한 생명을 보고 계시는군요.
물봉숭아의 보라색 꽃을 땄습니다. 이것들은 대개 습기가 자박자박 있는 곳에 자라나는 일년생 풀로, 달팽이처럼 꼬부라진 꽃관의 끝에는 아주 미미하게 달콤한 꿀이 들어 있습니다. “한 번 빨아 보세요. 달콤하답니다.” 누군가 내 손에 들렸던 물봉숭아의 꽃 밑둥을 입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는 어설프게, 마치 생전 처음 닿는 다른 이의 입술인 것처럼 빠는지 씹는지 합니다. “에이. 별로인데요? 꿀이 없어요.”
괜찮습니다. 숟갈 가득 듬뿍듬뿍 떠먹던 마켓의 기울어진 습관에 혀의 세미한 감동을 잠시 잃었지만, 그대의 입에서 씹히다가 버려진 그 물봉숭아의 꽃 속에는 잠들어 있는 씨앗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그대가 취하여 빨거나 씹는 달콤함만이 가을이 아닙니다. 침을 흘리게 하는 달콤한 과육 대신 그대의 손에서 입에서 버림받는 그 씨앗들을 기억해 주시지요. 하나님은 그대가 버린 그것으로 다시 내일을 짓고 계십니다.
“영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