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사망] 강연·집필 통해 北실상 알려… 국정원 산하단체 이사장 맡기도

입력 2010-10-10 18:33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남한 정착 후 지속적인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 비판에 앞장섰다.

황씨는 입국 직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안가를 제공받고 전담 경호원 10여명의 24시간 근접경호를 받았다. 그러나 망명 이후 들어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갈등을 빚고 활동도 다소 위축됐다. 특히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인 2000년 말에는 미국 방문을 두고 정부와 날을 세웠다. 황씨가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황씨에 대한 경호를 해제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방미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친동생처럼 지내오던 김덕홍 전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과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황씨와 함께 망명했던 김씨는 황씨와 결별 후 별다른 활동 없이 국정원의 경호를 받고 있다. 황씨는 결국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인 2003년 미국 땅을 밟았다.

현 정부 들어 특히 지난해부터는 대북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주로 탈북자동지회, 북한민주화위원회 같은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강연과 방송을 통해 북한 실상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부정기적으로 대학생 안보강연을 하는가 하면 대북 단파라디오 ‘자유북한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민주주의 강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타계 직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지난해 5월에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를 극비리에 만났다. 이어 4개월 후에는 저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발간하고 “만일 중국이 북한 통치집단과 동맹을 끊으면 북한의 붕괴가 곧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한때 대북 정책연구소에 몸담으며 정부의 대북정책 브레인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황씨는 1997년 입국 뒤 그해 11월부터 2003년 말까지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대북 연구를 진행했다. 또 2003년 9월부터는 당시 통일부 인가를 받은 민주주의 정치철학연구소에서 주체사상 비판과 철학 연구,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북한 민주화동맹 위원장으로 보폭을 넓혔으며, 사망 직전까지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민주주의 정치철학연구소 이사장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0일 오전에도 임진각에서 열릴 대북전단살포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