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北 주체사상 대부, 南에서 눈감다…남북 오간 풍운아 황장엽씨 사망
입력 2010-10-11 00:17
북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남북한 체제를 넘나들었던 분단의 초상(肖像)이 숨을 거뒀다. 타살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조선노동당 전 비서 황장엽(87)씨가 10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논현동 자택 2층 침실 안 욕실에서 욕조에 물을 반쯤 채우고 앉아 숨져 있는 것을 신변보호팀 직원이 발견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발견 당시 황씨는 숨을 쉬지 않았고 욕조의 물은 따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나 외상 등 타살 혐의점이 없는 점으로 미뤄 노환에 의한 돌연사로 추정했다. 9일 귀가해 침실에서 잠을 잔 황씨가 아침에 일어난 뒤 반신욕을 하다 심장마비 등으로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황씨는 매일 오전 5∼7시 좌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외부 충격으로 생긴 상처는 없었다. 안병정 강남서장은 “현재까지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초 발견자와 근무자 등을 조사해 사망 경위를 파악하고 자택 주변 방범용 감시카메라 녹화영상을 분석해 외부 침입 여부를 재확인할 계획이다. 검찰은 대공사건 전담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황씨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지휘를 맡겼다.
황씨 시신은 신월동 국과원에서 부검을 마친 뒤 빈소가 차려진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장례위원회 명예위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례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황씨는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닦아 ‘주체사상의 대부’로 통했다. 그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대 총장,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생이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주체사상을 일대 일로 가르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황씨는 1997년 2월 돌연 탈북을 단행했다. 김정일 체제로는 북한에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주체사상의 망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남한에서 북한 민주화와 북한 정권 비판에 온몸을 바쳤다. 북한이 황씨를 암살 대상 1위로 지목하자 국무총리급 이상의 경호를 줄곧 받아왔다. 지난 4월에는 황씨 암살 지령을 받고 남한에 들어왔던 북한 정찰국 소속 공작원 2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남한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2000년에는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북한 비판을 계속하자 국가정보원이 안전가옥에서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강창욱 이도경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