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핏줄 맞아?… 유산 싸움에 친자 확인·부인 소송 봇물

입력 2010-10-10 18:12


90세 할머니 A씨는 호적상 아들로 올라있는 남편의 조카 B씨를 상대로 법원에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50여년 전 결혼 뒤 아이가 좀처럼 생기지 않자 B씨를 아들로 삼아 직접 키웠는데, 몇 년 전 남편이 숨진 뒤 “죽기 전에 호적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다”며 소송을 낸 것. 그러나 A씨의 속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뒤늦게 얻은 친딸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B씨의 손을 들어줬다. B씨가 A씨의 친생자가 아닌 것은 파양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것이다.



최근 친부모와 친자식인지를 가려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10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친생자관계존부확인 및 친생부인 소송 건수(1심 기준)는 4487건으로, 2008년 3568건보다 25.8% 증가했다. 이런 소송은 2005년 2292건을 시작으로 지난 3년간 연평균 23%씩 늘어났다. 전체 가사소송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8.0%로 이혼소송(85.9%)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과거 핏줄을 찾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면 요즘에는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비교적 간단히 가족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친부모 또는 친자식 찾기 소송 급증세의 일차적 원인이다. 실제로 최근 DNA 검사비용은 건당 20만원대다. 검사 결과 역시 빠르면 하루 만에 나온다.

친생자 관련 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한다. 지난해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 소송의 원고 승소율은 일부승소를 포함해 77.1%에 달했다. 반면 항소율은 0.9%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유 외에도 재산 다툼과 가족 간 불화가 가족관계를 확인 또는 포기하려는 소송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1세 여성인 C씨는 어릴 때부터 “넌 내 자식이 아니다”며 자신을 홀대했던 아버지를 미워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니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이름을 빼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부터라도 아버지와 가족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게 청구 취지였다.

가사소송 전문 김수진 변호사는 “최근에는 부모 자식 또는 부부끼리 증오와 오해가 깊어져 호적을 변경하고 이혼을 할 목적으로 소송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해 친생자 부인 소송을 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울가정법원 김윤정 공보판사도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 등은 고령층이 주로 내는데 상속 문제가 주 원인”이라며 “윗세대에서 얽힌 가족관계가 다음 세대로 내려오고 상속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려는 목적의 소송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현 노석조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