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또 ‘지배구조 흔들’… 금융권 불치병?

입력 2010-10-10 21:29


신한금융지주 사태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신한금융은 경영권 공백이 생겨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당국을 상대로 라응찬 회장의 징계수위를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권은 신한금융 사태가 국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KB금융지주에 이어 신한금융까지 ‘CEO 리스크’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경영 공백은 막아라”=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8일 귀국한 라 회장은 주말에도 실무진과 대책회의를 가졌다. 금융감독원이 제기한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해 소명자료를 만들고 단계적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 회장은 11일 오전 출근길에 신한은행 본점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당국 징계에 대한 심경 등을 피력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다음 달 4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 수위를 확정하면 이사회 소집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일단 신한금융은 라 회장 징계수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감원의 중징계는 면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3가지다. 신한금융은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라 회장이 자리를 유지하며 후계구도를 세운 뒤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무 일부정지 수준의 징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라 회장이 잘못을 공식 사과하고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지배구조를 안정시키고 나가겠다는 취지로 호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는 라 회장이 제재심의위원회 이전에 자진 사퇴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압박, 검찰 수사가 신상훈 사장에서 라 회장까지 확대된 점 등이 부담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라 회장이 물러나면 이번 사태와 관련한 3인(라 회장, 신 사장, 이백순 행장)을 제외한 직무대행 체제로 내년 3월 주총까지 간다는 시나리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허울뿐인 사외이사 제도도 문제이지만 외부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며 “신한지주 사태가 정부와 금융당국이 경영에 개입할 빌미가 되거나 낙하산 인사로 이어진다면 국내 금융회사가 안고 있는 CEO 리스크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곪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지배구조 잔혹사’=금융권은 잊을 만하면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4대 은행지주회사(KB·우리·신한·하나) 가운데 KB금융과 우리금융은 회장 선임 과정에서 외부 입김을 차단하지 못한 한계를 노출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지배구조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신한금융은 라 회장의 20년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런 지배구조의 구조적 문제가 ‘CEO 잔혹사’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다. 강 전 행장은 지난 8월 해외투자 손실 등을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조치를 받았다. 강 전 행장은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이 물러난 뒤 회장 자리에 도전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고, 끝내 금융감독당국의 중징계를 받았다.

황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 손실과 관련해 중징계를 받으면서 취임 1년 만에 자진사퇴했다. 황 전 회장의 사퇴로 KB금융은 1년여 동안 ‘CEO 리스크’라는 폭풍에 휘말렸다.

신한금융은 검찰 수사, 금융당국 중징계, 주주 소송 등 전방위에 걸쳐 혼란을 겪고 있다. 신한은행 비서실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