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유기농 유감

입력 2010-10-10 17:46


오래전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유기농’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한 시골 농장에서 달걀 바구니에 크기가 서로 다른 계란을 담은 채 마트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팔고 있었고, 많이 시들어버린 줄기 끝에 달린 홍당무를 사가는 현지 주민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유기농 열풍이 일고 있다. 귀가 얇고 농산물에 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유기농>전환기유기농>무농약>저농약의 부등호에 대한 절대 신봉자가 되었고, 콩나물도 살쪄 있으면 일단 불신의 눈으로 젓가락질하기를 두려워하고, 좋아하는 사과는 무농약이라 해도 씻어 먹어야 후련하다. 수입산인 바나나도 유기농 마크가 없으면 혀가 아린 맛을 느끼고 수입밀가루보다는 우리밀 제품을 구입해 먹고 있다.

그런데, 한 괴짜 농부의 입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를 듣게 됐다. 유기농은 현재로선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무서운 적이라는 것이다.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나 목축을 할 경우 일부 소수의 인원만이 유기농식품을 섭취하게 됨으로써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식량 부족에 허덕이게 되고, 농산지 부족으로 산야로 남아 있어야 할 부분이 점점 경작되어 그 폐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게 명약관화하다는 논리였다. 그 나름의 철학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단순하게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계산하고, 현재 지구상 국가들의 빈곤을 대충 감안해 봐도 유기농이란 단어로 우리 인류 전체를 보듬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같은 것으로 식량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같은 면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제적 이유와 범 인류를 생각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석유자원이 고갈된다고 해서 바이오디젤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지구 한편에서는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식량으로 연료를 만드는 일을 하는 나라들도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식탁에 앉아 신토불이가 무엇인가 하고 준비한 반찬들을 둘러본다. 유난하고 까다롭게 식재료를 챙겨가면서 사는 것보다 농약도 비료도 부지불식간에 먹어가면서 둥글둥글하게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학교 앞 포도밭 할머니가 직접 수확하신 포도를 씻지 않고 바로 먹어 보이시는 무언의 믿음이 바로 신토불이의 실천이 아닐까 한다. 지렁이농법도 유기농에 저촉된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준보다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농약과 적당량의 무기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있으면서, 가까운 지역 농산물을 직접 사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떨까. 이런 것이 사람의 정이 흐르는 신토불이 본연의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유기농아, 널 많이 사랑했는데 앞으로는 저농약 농산물도 좀 보듬어 주고 공장 콩나물도 맛나게 먹어야겠다. 상추쌈 한 입에 풋고추 하나 된장에 푹 찔러 먹으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면 그것이 진정한 유기농 행복 아닐까 한다.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