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황장엽씨 망명 13년, 변하지 않은 북한

입력 2010-10-10 17:45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어제 서울 자택에서 숨졌다. 타살 흔적이 없어 자연사가 확실해 보인다.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해 온 지 13년 만이다.



망명 당시 황씨는 북한 권력서열 10위권의 ‘초특급 인사’였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집대성했으며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거물이어서 그의 갑작스런 남한행은 북한 정권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망명 이유로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황씨는 당초 전쟁노선 포기와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려는 생각을 했으나 북한 실상을 세계 만방에 폭로하고 조국통일에 기여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는 말도 했다.

남한에 온 이후 그는 자기 소신을 실천에 옮기려 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중시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이어지면서 그의 행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 “주민을 굶어죽게 하는 김정일은 반역자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몇 십배 독재자”라고 주장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강연 등을 통해 대북 비판 목소리를 냈으나 울림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으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핵 개발을 무기로 주변국을 협박하고, 주민들을 굶기면서까지 군사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선군정치(先軍政治)’가 여전히 김정일 정권의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김정은으로의 3대 권력세습을 본격화해 황씨에게는 실망이 컸을 것이다.

황씨의 13년 망명 생활과 사망은 분단의 아픔이 결코 단시간에 치유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황씨가 남한으로 내려왔을 때 우리 국민들 역시 북한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탈북자가 2만명에 육박하는데도 북한은 크게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만큼 김정일 정권이 견고하다는 뜻이다.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을 언제 또 해올지 모른다. 대북 대비 태세를 한층 강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