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 시청자, 멀리 계신 해외동포 여러분∼” 가요무대 25주년 ‘산증인’ 김동건

입력 2010-10-10 18:52


수많은 가요 프로그램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지만, KBS 1TV ‘가요무대’는 25년째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청률, 예산 등 프로그램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도 ‘가요무대’를 흔들지 못했다. 밤잠을 설쳐가면서도 월요일이면 이 프로그램을 꼭 보고 자는 ‘어르신들’ 덕분이다.

“평소에 일찍 주무시는 노인분들도 월요일만은 잠을 꾹 참고서 이걸 보고 잠자리에 드세요. ‘KBS 뉴스=9시’이듯이, 가요무대는 월요일 밤 10시라고 시청자 마음속에 자리잡았지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김동건(71) 아나운서를 만났다. 1985년 첫 방송 때부터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 아나운서는 이제는 ‘가요무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2003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던 그는 지난 5월 7년 만에 ‘가요무대’로 복귀해 공백기를 빼고도 지금까지 18년째 마이크를 잡고 있다.

당시 복귀 방송에 대해 그는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데,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어서 NG 내고 끊었다가 가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방청객, 시청자, 멀리 계신 해외 동포, 근로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김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는 이제 ‘가요무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첫 방송이 나가고 6개월쯤 이걸 보고 한국 사람임을 느낀다는 해외 동포의 편지를 받았어요. 그래서 오프닝에 ‘해외동포 여러분’을 넣었는데, 그 뒤로 선원 철도기관사 농부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들도 호명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어요. 그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보는 분들도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가요무대’의 팬들은 10대 팬들 못지않은 열혈팬들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가요무대’를 똑같은 자리에서 방청해 방송국 경비와 제작들이 얼굴을 알 정도의 4인조 ‘할머니 군단’이 있었다는 것. 그들 중 몇 분이 돌아가셔서 최근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가요무대’의 가장 큰 적은 세월이다. 김정구(1916∼1998), 신세영(1926∼2010)씨 등 원로가수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아나운서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김정구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면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권영태 PD는 ‘가요무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객지에 나가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고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잖아요. 25년 전의 느낌대로 계속 갈 것입니다. 다만 시청층의 취향이 변하면 무대에 오르는 가수는 다르겠지요. 지금의 30대가 50∼60대가 되면, 또 아나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무대 나올지(웃음).”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