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서 개인전 여는 재미화가 한정희의 신앙·삶

입력 2010-10-10 14:53


2년 전까지 그의 그림에는 ‘색’이 없었다. 10년 동안 검정과 흰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좋아했던 색들을 ‘금식’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달라졌다.

지난 6일부터 서울 팔판동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재미화가

한정희(미국 뉴욕 쉘터록교회·58)씨의 이야기다. 빨강 파랑 노랑….

작품이 화려한 컬러로 옷을 갈아입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색 금식’을 푼 것이다. 이유가 뭘까.

한국을 떠나 스웨덴과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한씨가 예수님을 영접한 건 1998년 1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당시 김진홍(두레교회) 목사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9) 그의 눈높이는 오로지 이웃에 맞춰졌다.

우연히 약물중독에 빠진 한인 청소년들을 돌보는 목회자를 만났다. 60여명의 청소년과 ‘나눔선교회’라는 한 울타리에서 사는 그 목사의 헌신에 감동한 한씨는 ‘큰 돈’(한씨는 액수가 중요치 않다며 밝히기를 꺼려했다)을 서슴지 않고 내놓았다.

직접 선교회로 가 청소년들을 만났다. 이민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알코올과 마약에 빠져든 어린 학생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또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무채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색 금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씨는 마약중독자들을 돌보다 ‘나눔중독자’가 됐다. 작품전을 열고 모든 수익금을 나눔선교회에 전달했다. 선교회만 도운 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국 등지의 여러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퍼주는 걸 사명으로 알고 살았다.

하지만 한씨의 나눔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흐릿해지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다가 여러 번 쓰러졌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늘 마약 때문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고, 그 심정을 색깔 없이 검정과 흰색으로 그려나갔지요. 나아가 이 시대의 아픔을 밧줄이나 구겨진 종이, 나무토막 등 추상으로 표현하다보니 저 역시 정신적으로 우울했던 겁니다. 실제로 마약하는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요.”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한씨는 결국 2년 전 모든 걸 훌훌 털고 남편과 여행을 떠났다.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비로소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절로 탄성이 쏟아졌지요. 그러면서 그동안 억제했던 색채들을 재발견했고, 제 그림에 생명력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회복됐습니다.”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연의 소리(Voice of Nature)’다. 4계절의 푸르름을 담아 57점을 전시 중이다. 작품에서 모두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번 개인전 역시 나눔으로 돌아간다. 강원도 정선의 한 산골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개척교회 전도사 부부를 후원한다. 그들이 교회 세우는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이 없어도 전도사님 부부는 행복하게 목회를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뭔가 바라고 나누는 게 아닙니다. 나눔은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제가 회복되고 기쁘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겁니다.”

한씨의 ‘색 금식’은 끝났지만, 이웃을 향한 그의 금식 기도는 계속 이어진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