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10-10 17:15
(15) 경계를 넘어서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독일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상황에서 부딪히는 것이 문화적인 차이와 갈등이다. 괜찮은 직장에서 안정된 대우를 받고 있고 선진국의 쾌적한 사회 구조에서 살지만 문화적으로 이방인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오래 살 생각이 없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교민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독일 사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한국 사람끼리 모여서 독일 사회 속의 섬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나라에 사는 터키 사람들이 이런 점과 연관해서 대표적인 보기일 수 있다. 이슬람 문화를 철저히 유지하면서 유럽 기독교 사회의 한가운데서 자기들끼리 일정한 영역을 이루어 산다. 도르트문트 옆 보쿰대학교에 유학 온 후배 하나가 있어서 사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보쿰의 바텐샤이트란 동네에 사는데 터키 사람이 참 많았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만 보아도 터키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살다가 ‘유대인의 왕’이란 판결로 십자가에 달렸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길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뻗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고 병을 치유하면서 예수님은 유대인 지역과 이방인 지역을 넘나든다. 예수님이 주로 활동한 지역이 갈릴리 호수 주변이다.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동쪽이 데가볼리(‘열 개 도시’란 뜻)인데 이방인 지역이다. 서쪽이 유대인이 사는 지역 갈릴리다.
마가복음 4장 35절과 5장 1절에는 예수님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동쪽으로 건너가는 기록이 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에서 도착 시점이 아직 동트기 전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호수 동남쪽으로 꽤 떨어진 거라사인까지 제자들과 함께 걸었다. 걷는 동안 동이 터왔다. 거라사인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다.
5장 21절로 가면 예수님이 다시 유대인 지역으로 돌아온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그리고 바로 이어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신다. 예수님은 호수를 중심으로 동서를, 이방인과 유대인을 이으신다.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과 그 능력의 치유로 이으신다.
7장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북쪽으로 넘는다. 24절 이하를 보면 두로 지방에 가서 어느 여인의 딸을 고친다. 31절은 예수님이 두로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서 시돈으로 가고 거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데가볼리 지역을 돌아 갈릴리의 동쪽 호변에 도착한다고 전한다. 이방 지역을 두루 다니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님의 길은 언제나 경계를 넘어서 뻗어 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 나라도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유대 사회의 지도자나 예수의 가족과 고향 사람들이 예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의 눈엔 예수가 경계를 허물어 동질 집단의 전통을 깨는 자로 보였다. 예수님에겐 그게 구원의 길이었고.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