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북한, 키케로와 마르크스
입력 2010-10-10 20:31
“그들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진짜 그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 앞에 무릎 꿇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사상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시작된 황제 정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카이사르의 부하 안토니우스에 의해 암살당했다.
막 탄생한 초기 자본주의의 수탈에 분노한 칼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 말미에 키케로의 이 말에다 “만국의 노동자여 일어나라”는 문구를 첨가했다.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이후 세계 도처의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최근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을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북한 노동당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문구를 떼내 버렸다. 조만간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사진이 든 배지를 가슴에 달고 집안 거실마다 세 명의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 가히 한 가문의 제왕적 지배라 할 만하다.
키케로와 마르크스의 시대를 북한에 대입하면 유사한 점이 상당하다. 김일성 일가는 2000년 전 차례로 황제에 등극한 카이사르 일족과, 억압과 곤궁에 지친 북한 주민의 삶은 19세기 유럽 노동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일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폭정에 내몰린 그들에겐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어서다.
그런데도 우리 진보 진영은 비판은커녕 되레 “북한 비난은 남북관계만 악화시킨다”고 강변한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9일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게 나와 우리 당의 당론”이라고 공언했다. 진보 시민단체가 북한 권력 문제를 속이 시원하게 비판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로마의 민주주의 이념은 전 세계에 보급됐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끊임없이 자기 수정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사의 방향을 이처럼 돌려놓은 주인공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던 민의(民意)였다. 우리 사회도 북한도 이 역사의 강(江)에서 예외일 수 없다.
죽은 키케로와 마르크스가 다시 살아난다면 분명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과 그 일족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진짜 그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 앞에 무릎 꿇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여 일어나라”고 말했을 것이다.
혹시나 진보진영의 침묵이 남이 당하는 폭압은 외면한 채 자기 눈앞의 부당함에 대해서만 고함치는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아닐까.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