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생명사랑 밤길걷기] ‘어둠에서 희망으로’ … 1만여명 사랑의 행군
입력 2010-10-09 02:15
시원한 가을 밤 바람을 맞으며 내딛는 발걸음은 상쾌했다. 시민은 정겨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족, 연인, 친구의 손을 잡고 어둑어둑한 밤길을 힘차게 걸었다.
국민일보와 한국생명의전화가 공동 주최한 자살예방 캠페인 ‘2010년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가 8일 서울광장과 청계천, 서울숲 일대에서 열렸다. 올해 주제는 이웃과 함께 자신을 성찰하고 새 희망을 얻는다는 의미의 ‘어둠에서 희망으로 내면을 향한 여정’이었다.
1만여명의 참가자들은 오후 6시부터 서울광장을 가득 채웠다. 방송인 배한성씨의 사회로 진행된 식전행사부터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아버지합창단, 가수 다이아, 전자바이올린 연주자 해나리 등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올해 행사에는 일본의 자살예방재단 ‘라이프링크’에서 자살자 유가족도 참석했다. 이들은 남편이나 부인, 자식을 잃은 사연을 소개하며 주변 사람이 자살했을 때 겪는 슬픔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을 선택해선 안 된다’는 생명존중 정신을 되새겼다.
7시50분쯤 서울광장~남산~청계천~한강~서울숲~청계천~서울광장으로 이어진 35㎞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참가자들은 각자 선택한 ‘생명 팔찌’를 차고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주황색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연두색은 가족을 위해, 노란색은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없는 밝은 사회를 위해, 흰색은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 걷는다는 의미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다양한 이벤트도 펼쳐졌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생명체험관에서는 슬픈 기억을 적은 ‘새드 스톤(돌)’과 ‘희망깃털’을 물 속에 던지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슬픔은 가라앉히고 희망을 떠올린다는 의미다. 영정 사진을 찍고, 유서를 쓴 뒤 관 속에 누워보는 임종체험 프로그램과 참가자들끼리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프리허그 행사도 마련됐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어보고 자기 별자리도 찾아보는 행사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육군 생명의전화’도 부스를 마련하고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자살 현황과 이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알렸다.
참가자들은 밤길 걷기를 마친 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적었다. 야광등을 단 메시지는 서울광장 잔디 위에 하트 모양으로 전시됐다.
남편, 아들과 함께 10㎞ 코스에 참가했다는 주부 이종선(44)씨는 “공부에 찌든 아이를 지켜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며 “가을 정취를 느끼고 가족과 도란도란 얘기도 하며 걷게 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아빠와 함께 온 중학생 민지(14)양도 “아빠랑 손잡고 걷는 게 쑥스러웠지만 그동안 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낸 후원금은 자살 위기에 놓인 이웃을 지원하고, 자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활동에 쓰인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