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산동 ‘꿈이동동’ 5가족의 행복한 육아일기
입력 2010-10-08 17:38
“와! 꼬꼬닭이다.”
우성(31개월)이는 동무라도 만난 듯 손을 흔들었다. 보경(26개월)이는 닭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까치발을 한 채 머리를 철조망에 들이밀었다. 수아(31개월)는 찰흙으로 만든 메추리알을 주겠다고 망 안으로 고사리 손을 집어넣었다. 태영(24개월)이는 토란잎 우산을 든 채 무서운지 슬그머니 꼬리를 뺐다. 아이들의 몸짓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리와, 이리 오라니까!”를 합창했다.
손짓도 해보고 소리도 질러보지만 ‘꼬꼬 꼬꼬댁’하고 울기만 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는 닭들 때문에 아이들은 울상이다. 아이들 목소리가 커지자 엄마 선생님들이 나섰다. “닭들이 닭장 안에 갇혀 있어요. 그래서 못 나오는 거예요. 다음에 또 보러 와요.” 그래도 아이들이 닭장 앞을 떠나지 못하자 엄마 선생님이 “와! 저기 터널이 있네요”하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유도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 서울 구산동 은평건강가정지원센터 공동육아나눔터에서 품앗이 교육을 하고 있는 ‘꿈이동동’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야외학습을 했다. 꿈이동동 회원은 5가족이지만 이날 참석한 것은 4가족 8명이었다. 주중 오전이어서 조용하던 주말농장에 엄마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민들레 꽃씨처럼 퍼져 나갔다.
이날 선생님을 맡은 수아 엄마 윤소정(37·대조동)씨는 “매주 금요일 오전 센터에서 수업을 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 밖으로 나왔다”면서 “오늘 주제는 자연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파닭도 만들고, 진짜 파와 닭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매월 주제를 정해 진행되는 수업은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을 한다. 전업주부들인 엄마들은 선생님이 아닐 때도 모두 참가해 보조교사를 맡는단다. 윤씨는 “수업을 일주일쯤 준비했는데 현장에 나오니 아이들의 관심사가 제각각이어서 준비한 것보다는 다른 것을 더 많이 보고 배웠다”며 이게 바로 엄마들이 하는 교육의 장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모임의 리더 격인 보경 엄마 최윤정(36·서울 역촌동)씨도 “문화센터에도 나가봤지만 아이들을 가장 잘 아는 엄마들이 사랑을 듬뿍 담아 가르치는 품앗이 교육이 훨씬 낫다”고 자랑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정해진 커리큘럼을 강요하면 싫증도 내고 못 따라 가는 아이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엄마 선생님들이 놀이를 통해 자연, 생활예절, 숫자 등을 가르치는 품앗이 교육에선 절대 그럴 염려가 없는 셈이다.
우성이에게 또래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꿈이동동에 합류했다는 고지혜(33·서울 불광1동)씨는 “엄마와 단둘이 지내다보니 대인관계가 서툴러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면서 품앗이 교육이 효과 만점이라고 말했다. 모임을 마치고 오자마자 우성이는 “수아 보고 싶다”고 할 만큼 좋아한단다. 태영이 엄마 송헌영(34·서울 응암동)씨는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던 태영이가 형, 누나들과 어울리면서 말도 많이 늘고, 친구란 개념도 익힌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이들이 품앗이교육을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은평건강가정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만난 이들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품앗이 교육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최씨와 송씨는 아이들에게 영어, 윤씨는 자연체험을 하는 품앗이 교육을 하나씩 더하고 있고, 고씨도 추가활동을 물색 중일 정도. 최씨는 “아이들 교육에도 효과적이지만 선생님을 하기 위해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같이 성장하기 때문에 엄마의 성취감도 크다”고 품앗이 교육의 값진 덤을 들려준다. 고씨는 “아이와 단둘이 365일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면서 “모임에 나와 또래 주부들과 보내면 잠시라도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엄마뿐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터. 워킹맘이었다 몇 달 전 전업주부가 된 송씨는 “아이에게 필요한 육아정보를 선배 엄마들에게 들을 수 있어 너무나 좋다”면서 “태영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여기 엄마들을 보면서 깨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센터에서 공간을 제공해줘 더욱 효과적인 품앗이 교육이 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집에서 하면 아이들이 산만해지고, 장난감 때문에 다툼도 일어나게 마련인데, 센터에서 하면 집중이 잘된다는 것.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외동아이가 많은 요즘 또래들과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선생님으로 나선 엄마가 욕심을 부려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파악해 모든 활동이 철저히 아이들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양=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